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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9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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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MSC, 2012 F1 공식 캘린더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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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포뮬러원 그랑프리 일정이 발표되었다. 12월 7일, 세계 모터스포츠 평의회(WMSC)가 공식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12년 F1은 올해보다 1개 그랑프리가 늘어난 20라운드로 개최된다.

2012 시즌 F1 캘린더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미국과 바레인의 재등장, 그리고 터키 탈락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랑프리 역사에서 진퇴를 거듭한 미국 그랑프리는 2007년 이후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4년 동안 F1을 떠났던 미국은 텍사스 오스틴에 새로 건설한 5.47km 서킷에서 복귀전을 치른다.
1년을 건너 뛴 바레인도 F1 캘린더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불안한 정국에 영향 받아 지난해 개막전으로 예정된 바레인 그랑프리는 개최되지 못했지만, 2012년에는 정상적으로 치러질 수 있을 전망이다. 바레인 그랑프리 창설전이 열린 때는 2004년. 시계방향으로 달리는 6.299km 사키르 서킷에서는 그동안 일곱 차례 그랑프리가 열렸다.
2005년부터 F1 대열에 합류한 터키의 운명은 지난해 그랑프리를 마지막으로 끝을 맺었다. 헤르만 틸케가 디자인한 이스탄불은 드라이버들에게는 악명 높은 서킷. 부진한 흥행에 덜미를 잡힌 터키는 결국 7년 동안 F1을 치른 뒤 그랑프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비운을 맞이했다.
20전으로 개최되는 2012 F1 그랑프리 개막전 개최국은 올해와 같은 호주. 말레이시아와 중국에 이어 돌아온 바레인이 그 뒤를 따르고, 스페인부터 아부다비까지는 지난해 캘린더 그대로다. 단, 독일 그랑프리는 내년에 호켄하임 서킷에서 열린다.
5년 만에 복귀하는 미국 그랑프리는 아부다비 뒤에 포진해 있다. 최종전은 내년에도 여전히 브라질 인터라고스에서 개최된다. 코리아 그랑프리는 일단 시리즈 16전에 포진해 있다. 그러나 세 번째 코리아 그랑프리를 낙관하기에는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남아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2012년 F1 캘린더에는 일주일 간격으로 열리는 백투백 레이스가 일곱 차례 포함되어 있다.
2012 F1 그랑프리 캘린더
라운드 그랑프리 서킷 날짜
1 호주 앨버트 파크 3월 16~18일
2 말레이시아 세팡 3월 23~25일
3 중국 상하이 4월 13~15일
4 바레인 BIC 4월 20~22일
5 스페인 카탈루냐 5월 11~13일
6 모나코 모나코 5월 24~27일
7 캐나다 질 빌르너브 6월 8~10일
8 유럽 발렌시아 6월 22~24일
9 영국 실버스톤 7월 6~8일
10 독일 호켄하임 7월 20~22일
11 헝가리 헝가로링 7월 27~29일
12 벨기에 스파 8월 31~9월 2일
13 이탈리아 몬자 9월 7~9일
14 싱가포르 싱가포르 9월 21~23일
15 일본 스즈카 10월 5~7일
16대한민국 KIC10월 12~14일
17 인도 델리 10월 26~28일
18 아부다비 야스 마리나 11월 2~4일
19 미국 오스틴 11월 16~18일
20 브라질 인터라고스 11월 23~25일

슈퍼 GT 한국 대회 2013년에 개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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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자동차경주, 슈퍼 GT가 우리나라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12월 9일, 이 대회 국내 주관사인 (주)우명홀딩스(대표 이명옥)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13년부터 국내에서 슈퍼 GT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대회 주최측은 이를 위한 첫 단계로 12월 15일 경기도 하남시 상곡동에 위치한 우명미술관 대강당에서 슈퍼 GT(GTC.Grand Touring Car Championship, 대표 반도마사이키) 측과 유치 운영에 대한 업무협력 조인식을 갖는다고 밝혔다.
이날 조인식에는 JAF 관계자와 수퍼 GT 임원 등 10명이 참석할 예정이며, 곽영진 문화체육부차관과 이교범 하남시장,지역구 국회의원, 국내 기업 관계자 등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우명홀딩스는 이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2009년부터 일본 슈퍼 GT 주최사인 GTA 측과 긴밀한 협의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양 측은 슈퍼 GT 한국 대회 성공을 위해 2013년부터 ‘슈퍼 GT 인 코리아’(SUPER GT in Korea)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주)우명홀딩스 이명옥 대표는 “슈퍼 GT 유치는 국내 스포츠카 매니아들은 물론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한 “이번 대회 유치로 국내 자동차산업과 레포츠 문화 발전, 지역경제 활성화, 고용창출, 관광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우명홀딩스는 자사 소유의 하남시 우명미술관에 한국 슈퍼 GT 대회 본부를 설치하고, 2012년 1월 코리아 슈퍼 GT 법인 설립과 함께 본격적인 대회 준비에 들어갈 방침이다.
홈페이지 : www.ksupergt.co.kr
박기현(allen@trackside.co.kr), 사진/(주)우명홀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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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 인디아와 토로 로소, 2012 라인업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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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 인디아와 토로 로소가 내년 드라이버 라인업을 확정, 발표했다. 대다수 팀들이 일찌감치 2012년 드라이버를 발표한 반면 포스 인디아와 토로 로소, 윌리엄즈, HRT 등은 라인업 선정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었다. 그러나 두 팀은 최근 2012년 F1을 함께할 소속팀 드라이버를 발표하고, 시즌 전 테스트 준비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부터 그랑프리에 출전한 포스 인디아가 선택한 드라이버는 폴 디 레스타와 니코 휠켄베르크. 이에 따라 디 레스타는 2년 연속 포스 인디아 시트를 확보했고, 지난해 팀 리저브 드라이버로 활약한 휠켄베르크가 애드리안 수틸을 밀어내고 두 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정규 드라이버로 승격한 휠켄베르크의 첫 소속팀은 윌리엄즈였다. 독일 포뮬러 BMW와 A1 그랑프리, 독일 F3, F3 유로 시리즈, GP2 등에서 활동한 니코는 2008년 윌리엄즈 테스트 드라이버로 발탁되었고, 2010년 윌리엄즈 팀에서 풀 시즌에 출전하며 인상적인 기록을 남겼다. 루키 시즌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머신으로 폴포지션(브라질 수중전)을 포함해 22점(드라이버즈 14위)을 획득한 것이다. 당시 니코의 폴포지션은 최근 6년 동안 윌리엄즈가 기록한 예선 최고 기록이었다.
그러나 루키의 행운은 1년으로 끝났다. 베네수엘라 오일회사 PDVSA의 지원을 받은 파스토 말도나도에게 윌리엄즈 시트를 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1년 동안 그랑프리 정규 레이스에 참가하지 못한 휠켄베르크의 복귀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 다니엘 리카르도(사진 위)가 하이메(아래)와 부에미를 따돌리고토로 로소 시트를 차지했다

토로 로소의 라인업은 다소 파격적이다. 잔류 가능성이 높았던 하이메 알게수아리와 세바스티앙 부에미가 탈락하고, 다니엘 리카르도와 장 에릭 베르뉴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레드 불 영 드라이버 출신인 리카르도는 HRT에서 올 시즌을 보냈다. F1 데뷔 무대는 영국 그랑프리. 11GP에 출전해 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팀으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아 토로 로소 라인업에 합류하게 되었다.
장 에릭은 2012년 F1 드라이버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리다(1990년 4월 25일생). 어린 시절을 아버지가 소유한 트랙에서 카트를 타며 보낸 에릭은 영국 F3(2010 챔피언), GP3, 포뮬러 르노 3.5 시리즈(2011 2위) 등을 거치며 포뮬러 커리어를 쌓았다. 2010년 아부다비에서 열린 영 드라이버 테스트를 통해 토로 로소와 인연을 맺었고, 올 시즌 브라질 그랑프리 금요일 연습주행 때 토로 로소 STR06 머신을 타고 인상적인 주행을 펼친 이후 팀의 신뢰를 이끌어낸 듯하다.
포스 인디아와 토로 로소 라인업이 확정됨에 따라 이제 시트는 2개 밖에 남지 않았다. 윌리엄즈와 HRT에 각각 한 개씩 남은 2012 F1 시트를 차지할 드라이버는 아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있다.
박기현(allen@trackside.co.kr), 사진/F1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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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일, ‘2011 모터스포츠인의 밤’ 행사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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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동차경주협회(KARA)가 오는 12월 20일(화) 서울 양재동 L타워 7층 그랜드홀에서 ‘2011 모터스포츠인의 밤’ 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KARA는 국제자동차연맹(FIA, UN 경제사회이사회 자문기관)이 1개국 1단체에 부여하는 모터스포츠 관장권(ASN)을 보유한 국내 유일 기관으로, 이번 모터스포츠인의 밤 행사는 2003년 이후 8년 만에 부활하게 되었다.
지난 10월 새로 취임한 변동식 회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국내 모터스포츠계의 화합과 발전을 도모할 계획이다. 변동식 회장은 “모터스포츠인들의 화합과 소통을 기반으로, 한국 모터스포츠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KARA는 경상남도 창원에서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열린 국제 F3 코리아 수퍼프리와 인터텍 인 코리아 등을 연이어 개최하며 국내 모터스포츠 핵심 단체로서의 위상을 높였다. 2003년 이후 F3 수퍼프리가 연장되지 못하면서 국내 모터스포츠 환경도 크게 위축되었고, 모터스포츠인의 밤 행사도 열리지 못했다.
올해 KARA는 제7대 회장으로 변동식 CJ헬로비전 대표이사를 추대했다. 변동식 회장은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의 역동적인 마인드를 KARA에 접목시켜 국내 모터스포츠 발전을 추진할 계획이다.
2011 모터스포츠인의 밤 행사를 주최하는 KARA 관계자는 “국내 모터스포츠가 2년째 F1 코리아 그랑프리를 개최해 외부적인 환경은 개선되었지만 내부적으로는 갈 길이 아직 멀다”면서 “KARA가 국내 모터스포츠의 저력을 끌어내고, 활성화를 선도하는 주관단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모터스포츠인의 밤 행사는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2012년 더 멀리 뛰기 위한 화합의 장이 되는 첫 무대”라고 덧붙였다.
한편, KARA는 모터스포츠인의 밤 행사에서 2012년 비전 선포식을 통해 앞으로의 사업 계획과 구체적인 실행 방안 등을 제시할 예정이다.
TRACKSIDE NEWS, 사진/K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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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A, 모터스포츠 대중화 위해 매진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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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동차경주협회(KARA)가 주관한 ‘2011 모터스포츠인의 밤’ 행사가 12월 20일(화) 서울 서초구 양재동 L타워 그랜드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KARA는 향후 4년 동안 추진할 비전을 발표하고, 모터스포츠인들의 화합을 강조했다.
“2015년, 150만 관중 시대 열기 위해 노력하겠다”
KARA 7대 회장으로 선임된 변동식 회장은 인사말을 전한 뒤 “하나의 산업을 성공적으로 일구기는 지루하고 어려운 일”이라면서 “국내 모터스포츠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2015년까지 주어진 임기 내에 모터스포츠가 크게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변동식 회장은 2012년을 모터스포츠 대중화 원년으로 삼고, 2015년에는 아시아 모터스포츠의 맹주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이날 KARA가 제시한 비전은 크게 모터스포츠 인프라 확충, 이용 저변 확대, 전문 역량 강화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제도와 정책 정비, 스폰서십 확대, 전문 인력과 기반설비 확충을 발판 삼아 대중성과 연관산업 협력 유도, 일반 관중 참여 프로그램 활성화 등을 추진할 방침이라는 것. 여기에는 2013년 모터스포츠 산업 활성화, 2014년 100만 관중시대(KARA 회원 5만명)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은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해 KARA는 중점 과제를 설정했다고 밝혔다. 스포츠 관련 정부기금 유치 강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드라이버 및 오피셜 등용 프로그램 강화, 대도시 인근의 서킷과 중소형 다목적(드래그 및 짐카나) 경주장 확충 등이다.
KARA는 모터스포츠 대중화를 추진할 세부 계획도 발표했다. 대중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국제자동차연맹(FIA)과 연계해 공익활동(Road Safety)을 펼치고, 자동차회사와 협회, 레이싱팀이 주축이 된 안전운전 프로그램도 운영할 방침이다. 일반인들이 즐길 수 있는 짐카나와 카트를 활성화시켜 모터스포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내구 레이스와 같은 모터스포츠 페스티벌 등으로 다각적인 틀에서 발전을 도모할 계획이다.
전문적인 역량을 키우는데도 힘을 쏟아 FIA 세계 모터스포츠평의회(WMSC) 및 주요 위원회 가입을 추진하고, 아시아 주요국과 정기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방안도 진행할 예정이다. KARA 내부적으로는 각 위원회의 권한과 책임 범위를 넓혀 다양성을 확보할 방침이다. 이밖에 국내 드라이버의 해외 진출을 위한 스칼라십을 운영하고, 역량을 갖춘 오피셜과 미캐닉의 해외 진출도 추진한다.
그러나 2015년까지 국내 모터스포츠 시장 규모를 5천억원 이상으로 키우고, 150만 관중을 유도하겠다는 KARA의 4년 청사진을 계획대로 추진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물론, 우리나라 모터스포츠의 중심에 서 있는 KARA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비전’이라는 데 이견은 없지만, 보다 현실적이고 세부적인 목표부터 차근차근 풀어 나아가는 일이 더 급선무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명쾌하고 발전적인 목표를 원만하게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KARA 내부로부터의 개선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다분히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현재까지의 모습으로는 레이싱팀과 드라이버, 각 프로모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 어렵다. 이름뿐인 KARA의 여러 위원회를 개선하는 일도 시급하다. 랠리, 카트, 4×4, 튜닝, 짐카나, 오피셜 위원회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는 KARA 모터스포츠 위원회의 최근 활동을 되돌아보면 향후 행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위원회 임원, 임기, 활동 등을 투명하게 공지해 회원들로부터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필요하다.
대체로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꾸리고 있는 레이싱팀과 드라이버들의 참여를 더욱 독려하려면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등록비와 같은 문제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KARA가 이 시점에서 재고해야 할 내용이라는 생각이다. 비영리 단체인 KARA의 내부 살림을 헤치는 수준이 되어서도 곤란한 일이지만, 많은 팀들이 내놓을 만한 타이틀 스폰서 없이 1년 농사를 짓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번 기회에 짚고 넘어가야할 사안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 문제는 어렵게 명맥을 이어가고 국내 카트계에 그대로 대입할 수 있다. 변변한 서킷 하나 없는 상황에서도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며 부단히 애쓰고 있는 카트계 오거나이저와 팀, 드라이버들에게 프로모터 또는 프로 레이싱팀과 같은 잣대를 요구하는 것은 발전을 전제로 한 선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일과 거리가 멀다.
카트는 차세대 우리나라 모터스포츠를 이끌어갈 드라이버를 양성하는 인큐베이터와 다르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자동차경주에 실력을 갖춘 드라이버들의 유입이 크게 줄어든 이유 가운데 하나는 넓지 않은 카트 레이스 저변에서 찾을 수 있다.
카트 레이스 활성화를 전시행정적인 인상이 짙은 ‘2011 코리아 카트 페스티벌’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계속된 이 행사가 KARA의 당초 목표인 ‘카트 저변확대와 꿈나무 육성’에 실질적인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회성 이벤트에 모터스포츠 문외한인 사람들의 마음이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 깊이 고민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레이스 프로모터들의 숙원인 관중 증대를 KARA가 어떤 해법을 갖고 풀어 나갈지도 궁금하다. 여기에 더해 상당한 비용이 발생하는 드라이버 스칼라십 운영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KARA 7대 회장으로 선임된 지 103일째 되는 날 ‘2011 모터스포츠인의 밤’을 주재한 변동식 회장은 시종 차분하고 자신 있게 발전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이 자체로도 일단 첫 단추는 잘 꿰었다고 평가된다. 대한민국 모터스포츠의 핵심 단체 KARA가 프로모터와 레이싱팀, 드라이버, 그리고 수많은 레이스 팬들에게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편, KARA는 모터스포츠인의 밤 행사에서 F1 코리아 그랑프리 조직위원회와 (주)슈퍼레이스,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KSF), MBC에 공로상을 수여했다.
박기현(allen@trackside.co.kr), 사진/K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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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이 고바야시 헬멧, 1만9천달러에 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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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버 F1이 소속팀 드라이버 카무이 고바야시와 6인조 하드록 그룹 린킨파크가 공동으로 진행한 자선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밝혔다.
자우버 팀에 따르면 고바야시가 이번 자선행사에 내놓은 헬멧은 지난해 F1 최종전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단 한 번밖에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온라인 옥션을 통해 1만9천달러(약 2천200만원)에 팔렸다. 수익금은 국제적으로 명성 있는 자선단체 뮤직 포 릴리프(Music for Relief)를 통해 일본 구호단체에 전달될 예정이다.
이번 자선행사는 지난해 싱가포르 그랑프리 때부터 계획되었다는 소식이다. 헬멧 디자인에는 린킨파크 멤버 겸 프로듀서 조셉 한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Music for Relief’는 그동안 500만달러(약 57억5천만원) 이상을 모금했다. 이 가운데 70만달러(약 8억원)는 지난해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들에게 이미 전달되었다. 자선행사를 통해 거둔 수익은 자연재해로부터 희생된 이들을 위해 사용된다.
세르지오 페레즈와 함께 올해도 자우버 시트를 차지한 카무이 고바야시는 현재 유일한 일본인 F1 드라이버로, 현재까지 기록한 드라이버즈 포인트는 65점. 2009년 토요타 팀에서 F1에 데뷔(브라질 그랑프리)한 뒤 3년 동안 40GP에 출전했다.
TRACKSIDE NEWS, 사진/자우버 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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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 카그래피 이명재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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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에서는 언제나 선한 이미지가 풍긴다. 사람 좋은 웃음이 몸에 밴 듯…, 늘 부드러운 얼굴로 세상과 마주하는 그에게서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손에 카메라가 들리면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웃음기 빠진 눈빛에 스민 ‘진중함’이 카메라 렌즈에 투영되는 찰나와 마주하는 순간이기에….
MJ 카그래피 이명재 실장. 모터사이클과 자동차 전문잡지 사진기자를 거쳐 지금은 자동차와 모터스포츠 현장을 주로 촬영하는 사진가로 변신한 그는 요즘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다른 열정과 실력을 인정받아 수입차 업계는 물론 여러 잡지 시승기에 들어갈 사진 촬영이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방배동에 마련된 MJ 카그래피 사무실을 찾아간 때는 지난해 연말 겨울바람이 차고 매서운 날 밤 10시.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훅 달려드는 온기가 반갑다. 손수 끓인 차를 내오며 “밀린 일이 많아 오늘도 철야를 해야 한다”는 이명재 실장의 얼굴에서 피곤한 기색은 찾을 수 없었다. 그의 말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맡은 일에 임해서일까?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 차향처럼 은은하게 번지는 듯했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한밤중으로 이어진 사진가 이명재와의 인터뷰는 예상보다 깊은 여운을 남겼다. 사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열정을 겸손으로 가렸지만, 인터뷰 내내 전해지는 그의 진정성에는 오래도록 반추해도 좋을 ‘그 무엇들’이 켜켜이 담긴 덕분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진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MJ 카그래피 이명재. 잠시 들여다 본 그의 사진 세계에는 우직하면서 매력적인 단면들이 촘촘하게 엮여있었다.
Q)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여러 분야 중에서 자동차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사촌형의 영향이 컸습니다. 모터크로스(산악용 모터사이클) 선수로 활동하던 사촌형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어요. 유년 시절(1970년대)의 나에게 모터사이클과 수입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던 당시 사촌형은 우상에 가까웠다고나 할까요?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에 자주 접한 모터사이클과 여러 자동차들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두 차례 F1 그랑프리에서 오피셜 포토그래퍼로 활동했지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어려웠던 일을 꼽자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세계적으로 유명한 드라이버들을 직접 촬영한다는 것은 힘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F1 코리아 그랑프리 조직위원회의 전체적인 운영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예를 들어 사진기자들이 이용하는 셔틀버스가 제때 운행되지 않은 점을 들 수 있어요. 외신기자들과 함께 무거운 장비를 들고 먼 거리를 이동했는데요. 내년에는 달라지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웃음).
Q) 국내 모터스포츠 현장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의 순간을 꼽으라면 언제일까요?
A) 무엇보다 1995년에 공식적으로 문을 연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서킷의 태동을 꼽고 싶습니다. 그 이전에는 레이스 전용 서킷이 없어 영종도나 청포대 등지를 오가며 비포장 레이스를 펼쳤었는데요, 스피드웨이가 문을 열면서 국내 모터스포츠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경남 창원에서 열린 F3 코리아 수퍼프리도 기억에 남는 이슈였습니다. 1999년부터 5년 동안 치러진 F3 코리아 수퍼프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치러진 해외 자동차경주로, 국내 레이스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입니다. 폭넓은 시야를 갖지 못했던 당시 국내 모터스포츠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진기자 입장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2010년에 처음 열린 F1 코리아 그랑프리도 빼놓을 수 없는 변화의 순간이지요. 모터스포츠 변방국에서 순식간에 세계 최고로 꼽히는 F1 그랑프리를 개최한 국가 반열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어느 모로 보나 F1 코리아 그랑프리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모터스포츠계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어요.
Q) 모터스포츠 외에도 자동차 사진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좋은 평판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동차 사진과 모터스포츠 사진 사이에 차이점 있다면?
A) 음…. 가장 큰 차이점은 수익입니다(웃음). 자동차 사진을 통해 대부분의 수익을 얻고 있으니까요(웃음). 자동차와 모터스포츠 사진의 공통 주제는 ‘자동차’를 찍는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자동차 사진은 상업적인 사진으로서 자동차가 가장 돋보여야 합니다. 그 때문에 장소 섭외부터 촬영 전반에 이르기까지 직접 모든 작업을 기획해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모터스포츠 사진은 레이스의 긴장감, 배기음, 선수들과 미캐닉들의 열정, 관중들의 응원 등이 한데 어우러진 하나의 다큐멘터리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나 혼자만의 구상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모터스포츠 사진은 ‘휴머니즘과 메커니즘의 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Q) 평소 촬영할 때 주로 사용하는 카메라는 어떤 것인가요?
A) 캐논 제품을 주로 사용합니다. 아무래도 사진은 결과물이 좋아야 하니까요. 니콘보다는 캐논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자동차 사진을 찍을 때는 5D 마크2(5D MARK2)와 28~105mm 렌즈를 애용하고, 모터스포츠 현장에서는 1D 마크3(1D MARK3), 70~200mm/300mm 렌즈와 1.4 컨버터를 사용합니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큰 직종이지요(웃음).
Q) 자동차든 모터스포츠 사진이든 사무실 밖에서의 작업이 많겠군요. 출장이 잦다보면 집에서 좋아하지 않을 듯한데요…….
A) 그런 면에서 아내에게 늘 미안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예전에 다니던 잡지사에서 사진기자와 디자이너로 만나 2년 동안 연애한 뒤 결혼했는데요. 예나 지금이나 아내는 늘 제 사진을 좋아합니다. 사진에 대한 저의 열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해주는 아내의 배려에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이 기회를 통해 늘 고맙고, 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Q) 지금까지 사진을 찍으면서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을 텐데요. 재미있는 경험도 많았을테고, 또 위험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A) 사실 사고가 제일 무섭지요. 4년 전, 후배가 장난으로 차를 가지고 묘기를 부리다 제 앞에서 전복된 일이 있었는데요, 정말 놀랐습니다. 사고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거든요.
좋은 앵글을 만들기 위해 차 밖으로 몸을 빼고 사진을 찍다가 위험한 순간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촬영에 열중하느라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는데요. 나중에 가로수와 전신주에 부딪칠 뻔 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카락이 꼿꼿하게 설 정도였으니까요.
Q)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면서 힘겨운 때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때 힘이 되는 멘토, 또는 좌우명이 있다면?
A) 지금은 고인이 된 일본 사진가 타지마 하루를 개인적인 멘토로 삼고 있습니다. 제가 자동차 사진을 시작할 무렵 일본에서 그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열정을 다해 일하는 모습에 반했습니다. 늘 머릿속에 새기고 있는 좌우명은 ‘일할 때 즐겨라’입니다. 누구나 그렇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힘들어도 즐겨야지요(웃음).
Q)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나 포토그래퍼는?
A) 자동차 사진을 주로 찍어서인지 차 사진에 더 애착이 갑니다. 특히 ‘대런 히스(DARREN HEATH)’라는 F1 사진가는 제게 깊은 감명을 준 인물인데요. 모터스포츠 사진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끌어올린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앞으로 모터스포츠 사진에는 도전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사진으로 담고 싶은 것이 있다면?
A) 지금보다는 더 폭넓은 영역을 다루고 싶습니다. 그동안에는 자동차를 고집했지만, 좀 더 많은 부분에 대해서도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여느 스포츠는 물론 다른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Q) ‘포토그래퍼 이명재’가 생각하는 사진 세계는?
A) 한 마디로 ‘제 인생의 모든 것’입니다. 사진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또 생활의 방편이기도 하니까요. 개인적인 모든 생활 패턴이 사진에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로 인해 아내와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점에 대해서는 늘 미안할 뿐입니다.
* <뉴스웨이>에 실린 윤경현 기자의 글과 사진을 옮겨왔습니다(편집자 주)

패트릭 헤드, 윌리엄즈 엔지니어링 디렉터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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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즈 F1이 패트릭 헤드가 더 이상 팀 엔지니어링 디렉터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윌리엄즈 그랑프리 홀딩스 PLC(WGF1)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패트릭은 팀 엔지니어링 디렉터 자리를 떠나 윌리엄즈 파워(Williams Power Limited.) 디렉터로 옮긴다. 이에 따라 앞으로 패트릭은 F1 머신 셋업에는 더 이상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윌리엄즈 대표 프랭크 윌리엄즈 경은 이와 관련해 “패트릭과 파트너십을 맺은 지 34년이 지났다. 헤드와 함께 그동안 수많은 레이스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윌리엄즈가 챔피언십을 차지하는데도 크게 기여한 패트릭은 우리에게 가치 있는 유산으로 남을 것이며, 잊을 수 없는 귀중한 보물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프랭크는 이어 “패트릭은 매우 솔직한 인물이었다. 진정으로 열심히 일했고, 엔지니어들이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의 오랜 동료로서 그로브에 오는 것을 언제나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윌리엄즈 F1을 떠나는 패트릭 헤드(65)는 “더 이상 팀에 머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면서 “앞으로 마이크 코플란과 마크 질란 등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겠다”고 밝혔다.
패트릭 헤드는 지난 1977년부터 윌리엄즈에서 활동했다. 그가 머문 34년 동안 윌리엄즈는 113승, 9회 컨스트럭터즈 챔피언, 7회 드라이버즈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윌리엄즈가 가장 최근에 기록한 우승은 후앙 파블로 몬토야의 2004년 최종전 브라질 그랑프리. 데이먼 힐과 자크 빌르너브가 활약한 96~97년 연속 컨스트럭터즈 타이틀을 제패한 이후에는 페라리, 맥라렌, 르노에 밀리면서 그랑프리 명가의 자존심을 구겼다. 지난해 컨스트럭터즈 순위는 9위. 모나코와 캐나다, 그리고 헝가리에서 겨우 5점을 얻었을 뿐이다.
박기현(allen@trackside.co.kr), 사진/윌리엄즈 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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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최다 연승 1위 드라이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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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최다 연승 부문 정상은 알베르토 아스카리가 쌓은 9연승이다. 아스카리는 페라리 드라이버로 월드 챔피언에 오른 1952~53년에 최다 연승 기록을 작성했다. 두 시즌에 걸쳐 세운 그의 연승 행진은 2위(미하엘 슈마허의 6승)와 큰 차이가 있어 당분간 허물어지지 않을 장벽으로 남을 듯하다.
1918년 이태리에서 태어난 아스카리는 ‘신비한 드라이버‘로 불렸다. 그의 승리에는 항상 우연과 행운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아스카리의 아버지 안토니오도 이름난 드라이버였다. 안토니오는 아스카리가 7살 때 프랑스 파리 근교 레이스 트랙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어린 아들은 아버지의 대를 이을 결심을 하고 몇 년 후 모터사이클 경주에 뛰어들었다.
1940년부터 카레이스에 출전한 그는 47년 그랑프리에 페라리 팀 드라이버로 데뷔했다. 현대적인 F1이 출범한 1950년 아스카리는 시즌 5위에 오르며 페라리의 에이스로 자리를 굳혔고, 51년에는 2승을 거두며 그 해 월드 챔피언 후앙 마누엘 판지오에 이어 드라이버즈 부분 2위를 차지했다.
F1 엔진 규정이 1.5ℓ에서 2.0ℓ로 바뀐 52년 F1은 페라리의 독무대였다. 시즌 개막전에서 피에로 타루피(페라리)가 승리했지만, 2전부터 여섯 경주 연속 아스카리가 우승해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따냈다. 이듬해에도 1~3전 표창대 정상을 밟아 F1 역사에 오래 남을 이정표를 세웠다. 월드 챔피언 2연패를 이룬 아스카리는 54~55년 마세라티와 란치아 팀에서 레이스를 펼쳤으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아스카리가 운명을 달리한 날은 1955년 5월 26일. 아버지 안토니오가 세상을 등진 날, 36세의 나이로 서킷을 떠났다. 이태리 몬자에서 스포츠카 테스트 드라이브 도중 트랙 장벽을 들이받는 불의의 사고를 낸 것이다. 50~55년 그랑프리에서 활동한 알베르토 아스카리는 6년 동안 32경기에 출전해 13승, 14폴포지션, 챔피언십 포인트 139점의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최다 연승 2위 드라이버는 미하엘 슈마허다. 그의 최다 연승 기록은 2004년의 7연승. 시리즈 18전 중 13전 우승컵을 독식한 것에 머물지 않고, 7전(유럽)부터 13전(헝가리)까지 7개 그랑프리를 연이어 석권하며 개인통산 일곱 번째 월드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3위에 이름을 올린 드라이버 역시 미하엘 슈마허. 2000년 최종전 말레이시아 GP까지 4연승을 거둔 슈마허는 2001년 개막전부터 2연승을 더해 6GP 연속 우승컵을 낚았다. 4위 그룹에는 잭 브라밤(60년), 짐 클라크(65년), 나이젤 만셀(92년), 미하엘 슈마허 등이 함께 올라 있다. 이들은 각각 연승 기록을 작성한 해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다.
호주 출신 드라이버 잭 브라밤은 55~70년까지 126회 F1에 출전해 3회 월드 챔피언(59, 60, 66년)에 올랐고, 영국 드라이버 짐 클라크는 2회(63, 65년)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80~95년까지 16년 동안 187전을 치른 나이젤 만셀은 윌리엄즈에서 활약한 92년 에 9승을 거둬 시즌 우승컵을 가져갔다.
최다 연승 순위
순위 연승 드라이버국적 기록 연도
1 9 알베르토 아스카리 이태리 1952~53
2 7 미하엘 슈마허 독일 2004
3 6 미하엘 슈마허 독일 200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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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F1 1, 2위 최소 시간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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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포뮬러원 챔피언십이 정식으로 출범한 이후 현재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는 세월이 흘러도 깨지지 않을 F1 최초의 월드 챔피언 기록 같은 영광스러운 이름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최단 시간 리타이어 같은 웃지 못 할 기록들도 있다.

단순히 패스티스트랩이나 서킷 랩 기록을 살펴보면 엔진과 에어로다이내믹 기술의 발달로 후대의 드라이버들이 과거의 영웅들을 뛰어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첨단 기술로도 넘어설 수 없는 기록들 또한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오히려 기술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드라이버들의 역량에 따라 작성된 기록들이 더욱 빛나는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1950년부터 현재까지, F1의 영웅들이 쌓아올린 ‘기록의 전당’속으로 들어가 보자.

역대 최단 1~2위 시간차는 1972년 이태리 그랑프리에서의 0.01

2002년 미국 그랑프리에서는 미하엘 슈마허가 연출한 해프닝으로 좀처럼 보기 어려운 1/100초 승부가 펼쳐졌다. 9월 29일, 15만 관중이 모인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슈마허를 선두로 1, 2그리드를 차지한 페라리는 윌리엄즈의 두 머신이 서로 부딪히는 어이없는 사고로 일찌감치 라이벌을 따돌리고 73랩을 편안하게 달렸다.

선두로 달리던 슈마허는 마지막 코너에서 갑자기 바깥쪽으로 돌아나가고, 오스트리아에서의 양보(루벤스 바리첼로가 1위 자리를 팀 동료 미하엘 슈마허에게 선두를 양보했다)에 화답이라도 하듯 바리첼로를 안쪽 라인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마치 드래그레이스를 펼치듯 나란히 직선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결과는 0.011초 차이로 바리첼로 역전승이었다.

결과 발표 후 슈마허는 “바리첼로와 함께 결승선을 통과해 새로운 기록을 만들고 싶었다”고 이야기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이미 확정지은 여유 때문이었는지, 신기록을 갱신에 재미가 붙어서인지, 슈마허의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오랜만에 F1에서 찰나의 승부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페라리의 쌍두마차는 피터 게딘과 로니 피터슨이 수립한 F1의 최소 시간차 1, 2위 기록을 깨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짧은 시간 차이로 1, 2위가 갈린 레이스는 이태리 몬자에서 나왔다. 과거 몬자 서킷은 고속 코스로 명성이 높았고, 기록의 주인공 피터 게딘은 11그리드에 섰지만 폴시터 크리스 아몽과의 차이는 단 1초에 불과했다. 레이스가 시작되자 10여 대가 꼬리를 물며 선두그룹을 형성해 우승자를 미리 점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고속 코스를 견디지 못하고 많은 드라이버들이 리타이어한 가운데 피터 게딘은 선두그룹으로 올라섰고,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둔 54랩에서는 피터슨에 이어 3위를 달렸다. 게딘은 피터슨이 갈 길을 가로막자 풀밭으로 뛰어들어 추월에 성공했다. 하지만 마지막 코너에서는 뒤늦은 브레이킹으로 타이어에서 하얀 연기를 피워 올렸고, 어렵게 균형을 잡은 그와 함께 5명이 무리를 지어 결승선을 통과했다. 결과적으로 우승을 거머쥔 드라이버는 게딘이었다. 2위 피터슨과는 겨우 0.01초 차이. 1~5위까지 0.61초안에 모두 결승선을 통과하는 F1 사상 초유의 레이스였다.

1986년 새로 만들어진 스페인 헤레즈에서 나이젤 만셀은 마지막 9랩을 남기고 타이어 교환으로 도박을 걸었지만 만셀의 역전극은 아쉽게 실패하고 0.014초 차이로 아일톤 세나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주가 1, 2위간 시간차에서 3번째 자리에 올라 있다.

F1 통산 0.1초 이하의 승부는 모두 7차례. 반면 촌음은커녕 선두와 한 바퀴 이상 차이를 보이는 다소 싱거운 승부들도 있었다. 1969년 스페인 몬주익 파크에서 재키 스튜어트는 선두권 드라이버들의 잇따른 리타이어로 2위 브루스 맥라렌을 무려 2바퀴 차이로 따돌리고 결승선을 밟았다.

또한 1995년 호주 애들레이드에서는 계속되는 사고로 28명 중 예선 2~11위를 포함한 16명이 리타이어하는 서바이벌 게임이 펼쳐졌다. 폴포지션에서 출발한 데이먼 힐은 경쟁자들이 사라지자 독주를 펼치며 올리비에 파니스보다 2바퀴 앞서 골인했다. 이밖에도 역대 F1 경기 중 1, 2위가 1바퀴 차이로 벌어진 경우는 무려 25번에 이른다.

F1 1~2위 최소 시간차 순위

1 피터 게딘 vs 로니 피터슨, 0.010, 이태리 몬자(1971)

2 루벤스 바리첼로 vs 미하엘 슈마허, 0.011, 미국 인디애나폴리스(2002)

3 아일톤 세나 vs 나이젤 만셀, 0.014, 스페인 헤레즈(1986)

4 엘리오 안젤리스 vs 케케 로스베르크, 0.050, 오스트리아 A1링(1982)

5 재키 스튜어트 vs 요헨 린트, 0.080, 이태리 몬자(1969)

박기현 기자 gokh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