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6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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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코리아 로드 레이스 2전 KIC에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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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일), 전남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IC)에서 대한모터사이클연맹 (KMF, Korea Motorcycle Federation)이 주최하는 ‘KMF 코리아 로드 레이스 챔피언십’ 2전이 개최된다.
이번 대회에는 대표적인 로드 레이스 SB1000(배기량 1천cc), ST600(배기량 600cc), 250(배기량 250cc) 등 3개 클래스에 46명, 오프로드 모터사이클에 로드 레이스용 휠과 타이어를 장착한 슈퍼모타드 A/B 클래스에 22명 등 총 68명이 참여할 예정이며, 투휠, AGIP, DK 등 국내 정상급 모터사이클 레이싱팀이 총 출동한다.
별도 이벤트로는 텐덤라이딩이 준비될 예정이다. 국내 최고의 전문 라이더가 운전하는 모터사이클에 동승해 서킷을 주행하는 것으로, 짜릿한 모터스포츠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더불어 일반인 체험주행도 진행된다. 전문 라이더가 아닌 일반인이 주행 교육에 참가하고 서킷을 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모터사이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데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회를 주최한 대한모터사이클연맹 임정환 회장은 “KMF 코리아 로드 레이스 챔피언십을 통해 모터사이클 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확산되기를 바라며, 모터사이클이 보다 대중화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12 KMF 코리아 로드 레이스 챔피언십 시리즈 4전은 모두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열린다.
대한모터사이클연맹 홈페이지: www.kmf.or.kr
TRACKSIDE NEWS,사진/K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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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프 쟁탈전 제4라운드 우승 후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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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카트 레이스를 리드하는 코리아 카트 챔피언십(KKC)이 6월 10일(일) 경기도 적성 스피드파크에서 시리즈 4전을 펼친다. 7전 중 하반기 3전을 앞두고 열리는 이번 대회는 시즌 전체 순위를 가늠할 수 있는 분수령. 이에 따라 각 클래스 드라이버들은 물론 국내 대표 카트 레이싱팀 대다수가 KKC 4전에 참가해 자웅을 겨룰 것으로 기대된다.
야마하 신인전에서의 경쟁 뜨겁다
올해 들어 더욱 치열한 순위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로탁스 맥스(엔진 배기량 125cc, 선수권전)에서는 선두 삼인방의 대결이 뜨겁다. 3전을 마친 현재 1, 3전 우승컵을 거머쥔 서주원(피노, 79점)이 1위. 급상승한 전력으로 2전 포디엄 정상을 밟은 김재현(BHR, 73점)이 그 뒤에서 호시탐탐 역전을 노리고 있다.
로탁스 맥스 우승 후보 영순위로 꼽히는 김진수(그리핀, 69점)는 예상보다 매끄럽지 못한 스타트를 끊었다. 그러나 개막전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어 하반기 돌풍의 핵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충분하다. 선두 트리오와의 점수 차이가 다소 벌어졌지만, 김택준(피노), 이충석(카티노), 김학겸(피노)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로탁스 마스터 부분 1위는 우주식(드림레이서 73점). 2012 전반 3전에서 우승 체커기를 받지는 못했지만, 세 차례 포디엄 피니시(2위 2회, 3위 1회)로 점수를 쌓은 덕에 2위 그룹을 멀리 따돌리고 득점 선두를 지키고 있다. 이에 맞서는 이베안(레전드, 51점)과 김정훈(카트밸리, 51점)은 하반기 반전을 노리는 드라이버로 꼽을 만하다. 홍성민(드림레이서), 장세현(레전드), 이종주(레전드), 최인석(카트밸리) 등 4명은 3전을 마친 현재 로탁스 마스터 클래스 공동 3위(40점).
로탁스 주니어 1~3위에는 김정태(피노), 박준빈(카트밸리), 김민규(몬터스)가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지난 3전부터 클래스를 올린 장의익(카티노)이 곧바로 1위를 기록해 남은 4전 트로피의 향방을 점치기 어렵게 되었다.
야마하 선수권전에서는 알렉세이(카티노, 77점)와 전찬욱(피노, 73점)의 선두 대결이 뜨겁다. 1, 2전 승자는 알렉세이. 그러나 알렉세이가 3전 3위로 밀려난 사이 전찬욱이 1위에 올라 두 드라이버의 점수 차이는 4점으로 줄어들었다. 이밖에 김강두(스피드)와 김영훈(드림레이서)은 야마하 선수권 3위 그룹에서 꾸준히 상승세를 타는 모습이다.
야마하 신인전은 올해 KKC에서 가장 화끈한 클래스로 손색이 없다. 피노, 드림레이서, 카티노, BHR, 스피드 팀 주전 드라이버들이 이 클래스에서 열띤 순위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즌 출발은 박성현(BHR)이 좋았다. 그러나 이어진 2, 3전 우승 트로피를 조희망(피노, 75점)이 가져가면서 야마하 신인전 강자로 떠올랐다.
야마하 신인전 2~4위는 이정민(드림, 59점), 안찬수(스피드, 57점), 여인영(카티노, 53점). 최근 두 경주에서 조희망의 선전에 밀린 이들은 안정된 레이스 운영을 바탕으로 역전을 노리고 있다. 한편, 개막전 승자 박성현은 2, 3전에서 포인트를 더하지 못해 8위로 밀렸다.
한국자동차경주협회 공인 경기로 개최되는 2012 코리아 카트 챔피언십은 로탁스 코리아가 주최하고 경주 카트밸리가 주관한다.
박기현(allen@trackside.co.kr),사진/KKC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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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브라운, 미하엘 슈마허 내년 거취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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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기록의 주인공, 미하엘 슈마허에 대한 로스 브라운의 언급이 화제가 되고 있다. 캐나다 그랑프리를 앞둔 6월 초, 메르세데스 팀 대표 로스 브라운이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슈마허가 2013년에도 레이싱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한 때문이다.
메르세데스와 슈마허의 계약 기간은 3년. 2006년까지 페라리에서 활동한 뒤 은퇴한 슈마허는 2010년 메르세데스를 통해 F1으로 돌아오면서 3년 계약을 맺었다. 슈마허와 메르세데스의 계약이 올 시즌 끝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2012 시리즈 초반 6전을 진행한 상태에서 나온 브라운의 말은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올해 팀의 목표가 성사된다면…’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모나코에서 잠정 폴포지션을 기록하는 등 눈에 띄게 견실한 개선을 보여주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팀 대표의 발언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슈마허와 함께하면서 메르세데스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이유는 뜻하지 않은 몇몇 상황 탓”이었다는 브라운은 “슈마허와 내년에도 함께할 수 있다면 팀으로서는 기쁜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브라운은 “모나코에서의 폴포지션은 슈마허의 여전한 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면서 “그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2013년 메르세데스 시트와 관련해 한두 명이 접촉을 시도했지만, 이와 관련해 우리는 어떤 계획도갖고 있지않다”는 로스 브라운의 말이 현실로 드러날지는 아직 미지수. 그러나 결승 결과에 상관없이 올해 들어 좋은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메르세데스와 슈마허의 공동 목표가 이루어진다면 역대 F1 최다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슈마허가 내년에도 활동하는 모습을 보게 될 가능성은 유효한 듯하다.
TRACKSIDE NEWS,사진/피렐리타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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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코리아 GP 자원봉사자 1천676명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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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조직위원회가 지난 4월 23일부터 6월 1일까지 40일 동안 자원봉사자를 모집한 결과 선발인원 629명에 1천676의 지원자가 몰렸다.
지원자 중 최고령자는 86세의 일본어 통역가 박정화씨로, 3년 연속 F1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또한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54명과 해외 대학 졸업자 19명도 통역 분야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전국소재 대학교와 현대삼호중공업, 기아자동차, 대한조선, 포스코 등의 기업체에서도 많은 관심을 나타냈으며, 특히 호남대 영어영문과에서는 담당 교수 이하 학생들이 단체로 자원봉사 신청을 했다.
직업별로는 대학교수, 통역가, 학원강사, 기업관계자, 연구원, 대학생, 시인, 병원관계자, 군인 등으로 다양했으며, 연령별로는 20대가 80%로 가장 많았다. 3년 연속 자원봉사를 신청한 이들은 185명이다.
F1 조직위는 자원봉사 신청자들을 상대로 F1 관련 기본소양, 외국어 능력, 국제 대회 자원봉사 경험 등을 살펴보는 서류 및 면접심사를 거쳐 다음 달 최종 합격자를 선발해 개별 통보할 계획이다.
합격자는 대회 임무 수행에 필요한 기본 소양교육(7월)과 현장교육(10월) 등을 거쳐 F1 코리아 그랑프리 기간인 10월 11부터 14일까지 4일간 활동할 예정이다.
TRACKSIDE NEWS,사진/LAT Photograp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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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오토테마파크, 모터스포츠 복합관광시설로 건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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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1시간 10분 거리에 세워질 국제자동차경주장 ‘인제오토피아 테마파크’가 완공을 앞두고 올 여름부터 본격적인 모터스포츠 문화 조성에 불을 지핀다.
강원도 인제군과 인제오토피아 매니지먼트사는 6월 4일(월) 인제오토피아 관광지 건설현장으로 업계 관계자들을 초청해 시설 현황과 향후 운영계획을 설명하는 팸투어를 개최했다.
이날 초청된 기자, 자동차ㆍ모터스포츠ㆍ방송ㆍ엔터테인먼트 관계자 90여명은 현대적 시설의 자동차경주장과 모터스포츠 체험관, 호텔, 콘도미니엄 등을 갖춘 복합 관광단지 공사현장을 둘러보고 인제군청에서 향후 운영계획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내년 4월 완공, 올 가을부터 사용할 수 있도록 추진 중
오토테마파크는 내년 4월 완공될 예정이며, 올 가을부터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토목 공정의 90%를 넘긴 인제오토피아 공사는 2011년 2월 첫 삽을 뜨기 시작해 27개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내년 4월 완공될 계획이다. 경기장 측은 트랙 노면과 방호벽 등이 완성되는 올 10월부터는 임시 사용허가를 받아 주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인제오토테마파크의 양치호 대표이사는 “현재 공정은 계획대비 111%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최대한 올해 안에 트랙을 임시 개장해 일반에 공개하고 나머지 시설들은 내년 봄에 맞추어 모두 완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제오토테마파크는 수도권의 자동차, 바이크 매니아를 겨냥한 복합 관광시설이다. 국제 대회를 치를 수 있는 상설 자동차경기장으로서는 국내 최대 길이인 3.98Km의 자동차경주장과, 2만석의 메인 그랜드스탠드를 포함한 총 7만석의 관람석, 카트 경주장, 모터스포츠 체험관, 134실 규모의 호텔과 118실의 콘도미니엄이 함께 완공된다.
호텔과 콘도는 경주장 VIP룸처럼 거의 대부분의 객실에서 TV 화면에서 중계되는 영상과 순위표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발코니에서 경주를 관람할 수 있다. 물론, 호텔과 콘도에서 지하통로를 이용해 경주장 내부로 직접 접근하는 것도 가능하다. 모터스포츠 체험관에는 다양한 전시와 함께 현재 F1 팀들이 실전 테스트용으로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시뮬레이터를 설치해 드라이버 교육생과 일반인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레이싱 트랙은 고저차와 코너를 이용해 다양한 테스트와 재미있는 주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성수기 트랙주행 수요가 많을 것을 감안해 레이싱 트랙을 남북 코스로 나누어 동시에 두 개의 행사가 가능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인제오토피아 관계자는 “자동차주행뿐만 아니라, 휴양, 자전거, 바이크, 카트, 테마파크 등 모터스포츠를 테마로 즐길 수 있는 거의 모든 시설과 프로그램이 이 한 곳에 모이게 될 것”이라며 “경주장 바로 옆에서 번지점프, 수영이나 래프팅을 하거나 산악자전거, 휴양림 산책도 할 수 있다. 겨울에도 스노 레이싱을 즐기거나 60만명이 찾아오는 빙어축제 같은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게다가 15분이면 설악산 한계령에 닿는다. 거의 모든 관광자원들이 집중된 곳이 바로 인제오토피아”라고 설명했다.
2013년부터 서울에서 인제까지 1시간 20분 거리
2013년부터 서울에서 인제까지 1시간 20분 거리로 지리적 입지에서도 양호한 편이다. 인제오토피아는 세계래프팅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던 인제군 내린천 인근에 위치한다. 북한강의 상류 내린천은 지금도 연간 15만명이 찾는 국내 최고의 래프팅 관광지 중 하나다.
서울에서 인제군까지는 현재 자동차로 1시간 40분, 동서고속도로가 개통되는 내년부터는 1시간 20분으로 단축된다. 자동차경주장은 동서고속도로 인제 톨게이트에서 차로 5분 거리다. 그만큼 수도권으로부터 최적의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다. 인제 톨게이트는 연간 수백만명의 수도권 인구가 지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순선 인제군수는 “인제오토테마파크 관광지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자체 차원에서 인력 공동 양성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으며, 홍보ㆍ마케팅 업무협의도 착실히 이어지고 있다. 내년부터 인제오토테마파크를 찾을 국내외 관광객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주민교육과 숙박ㆍ요식업 관계자들에 대한 사전교육도 올 여름부터 시작할 것”이라며 지자체 차원의 준비 계획을 소개했다.
인제오토테마파크는 내년 개장을 앞두고 올해 6월부터 본격적인 홍보ㆍ마케팅과 함께 레이싱 문화 개선 사업을 진행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레이싱 팬들을 육성하고 일반 대중이 모터스포츠를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소통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인제오토피아에서는 전국을 순회하며 일반인들에게 인제오토피아를 알릴 수 있도록 일반 리무진 버스를 개조한 투어버스를 만들었다. 투어버스 내부에는 경기장의 중앙통제실 시설을 축소한 레이스컨트롤과 소형 VIP룸이 있어 일반인들이 편히 앉아서 경기장에 있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인제오토피아는 우선적으로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투어버스를 운영하면서 이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더불어 6월부터는 홈페이지를 오픈하고 인제오토피아 레이싱팀 및 전속 레이싱걸과 함께 다양한 파티, 축제, 행사 등을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TRACKSIDE NEWS,사진/인제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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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T 클래스에서 문은일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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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타이어가 후원하는‘2012 넥센타이어 스피드레이싱’ 제3전이 지난 3일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에는 11개 클래스에 총 215명이 참가했다.
스피드레이싱에서 가장 인기 있는 SGT 클래스에서는 코란도C, 스포티지R, 투싼IX의 3파전 결과 스포티지R로 출전한 문은일(팀 천안샤프카)이 첫 우승을 차지했다. 승용 GT 클래스 통합 결승에서는 제네시스 쿠페를 타고 나온 민수홍(디원스펙)이 GT-300 부분 2연승을 거두었다.
이밖에 넥센타이어 스피드레이싱은 최근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팀 최다연승(8연승) 기록을 기념하여 ‘나도 강속구 왕’과 ‘킥&타켓’ 게임 등 다양한 경품 행사도 함께 진행해 관람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넥센타이어 스피드 레이싱 4전은 7월 22일 KIC에서 개최된다.
TRACKSIDE NEWS, 사진/KSR

슈퍼 레이스와 KSF 통합전이 갖는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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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20일(일), 전남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IC)에서 함께 열린 ‘헬로모바일 슈퍼 레이스 챔피언십 2전’과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KSF) 개막전’은 표면적으로 원만하게 마무리되었다. 당초 우려와 달리 별다른 혼선 없이 우리나라 자동차경주를 대표하는 2개 모터스포츠 이벤트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치러진 것이다.
이로 인해 KIC는 이틀 내내 바쁘게 돌아갔다. 슈퍼 레이스 챔피언십 5개, KSF에 4개 등 각 프로모터가 내세운 메인 클래스와 서포트 레이스 예선 및 결승이 촘촘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관중 입장에서는 더 없이 즐거운 하루였을 듯하다. 국내 인기 레이싱팀과 드라이버들이 한 자리에서 펼치는 레이스를 공짜로 관람할 수 있는 자리였으므로…….
그러나 전체 레이스를 관장하는 대회조직위원회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서로 다른 프로모터가 운영하는 2개 자동차경주를 차질 없이 소화하려면 예상을 뛰어넘는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을 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실수도 생기기 마련. 헬로모바일 슈퍼 레이스 챔피언십에 소속된 자동차경주에 KSF 이름표를 붙인 페이스카가 등장한 것이 단적인 본보기라 하겠다. 이와 관련해 프로모터 (주)슈퍼레이스와 (주)이노션월드와이드 측은 별다른 의미 부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있을 수 있는 ‘에피소드’ 정도로 평가한 것일까?
▲ KIC 메인 아치에 걸린 2개 대회 플래카드가 상징하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사진 위쪽은 슈퍼 레이스 엑스타 GT, 아래 사진은 KSF 제네시스 쿠페 챔피언십

결승 이튿날 읽은 보도자료는 대체로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주요 골자는 ‘평소보다 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이전과 차원이 다른 레이스가 열렸고, 통합전 역시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것. 여기에는 맞는 말도, 또 사실과 다소 동떨어진 표현도 섞여 있었지만, 흥행 성적이 무엇보다 중요한 프로모터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자체 평가에서 현실을 직시하지 않은 다분히 과장된 표현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레이스 현장을 찾지 않은(덧붙여 현장을 지켜본) 다수의 미디어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을 버젓이 옮겨 실었다. 슈퍼 레이스 챔피언십 슈퍼6000 타이어 규정과 관련된 주최측과 금호타이어의 불편한 진실을 비롯해 이번 통합전이 갖는 진정한 의미에 대한 평가 등이 뒷전으로 밀린 것은 물론이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어렵게 막을 올린 통합전(통합전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자동차경주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치른 공동 개최에 가깝지만)이기에 장기적인 발전을 대전제로 한 이번 대회에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므로 그렇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번 대회와 같은 성격의 모터스포츠 이벤트가 우리 현실, 더 나아가 앞으로 우리나라 모터스포츠가 지향해야할 일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름만 ‘통합전’일뿐, 정작 그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내용을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 따라서 KIC 메인 아치에 걸린 2개 플래카드는 결코 작지 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원만하게 마무리되었다고 해서, 또한 평소보다 많은 관중이 이번 대회를 찾아왔다고 해서 무작정 반길 일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 대회에 대한 팀들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이 ‘긍정’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각 프로모터가 시간을 두고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내용이라는 생각이다.
박기현(allen@trackside.co.kr),사진/슈퍼레이스, K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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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을 빛낸 핀란드 드라이버③키미 라이코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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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출신 하키넨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아 맥라렌에 합류한 키미 라이코넨은 일찍부터 F1 드라이버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그랑프리 무대에서 ‘달리기 천재’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어색할 수도 있지만 라이코넨의 성장과정은 유독 눈부셨다.

핀란드 에스포에서 태어난 키미는 10세 때부터 해외 카트 레이스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카트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드라이버 활동을 시작한 때는 1999년. 20세에 포뮬러 르노 시트에 앉아 F1 입성의 꿈을 키웠다. 첫 해 기록은 개막전 3위가 최고. 그러나 포뮬러 포드 유로컵 시리즈 5위, 마노 팀 소속으로 출전한 포뮬러 르노 윈터 시리즈에서는 4전 4승으로 챔피언에 올랐다. 포뮬러 클래스 데뷔 해 성적으로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2000년에도 마노 소속으로 브리티시 르노 챔피언십에 출전한 키미는 10전 중 7승, 전 레이스 포디엄, 7회 폴포지션, 6회 패스티스트랩이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모터스포츠계의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유럽 포뮬러 르노에 세 번 출전해 2승을 거두기도 했다.

2년 동안 참가한 23회 포뮬러 레이스 가운데 절반이 넘는 13전에서 표창대 정상에 선 라이코넨의 드라이버 이력은 이후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그에게 자우버 팀 보스 피터 자우버가 F1 시트를 맡긴 것이다. F3와 F3000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F1에 발탁된 경우가 드문 때여서 라이코넨의 그랑프리 입성은 그 자체로 대단한 화제가 되었다.

2007년 페라리에서 월드 챔피언 등극

2001년 봄. 22세의 라이코넨은 마침내 정식 F1 드라이버로서 신고식을 치렀다. 개막전 호주 그랑프리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수많은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능숙한 주행을 펼쳐 6위를 기록했다. 데뷔 해 개막전을 6위로 시작한 뒤 오스트리아와 캐나다 4위, 영국 GP 5위에 오르는 등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라이코넨의 활약에 힘입어 자우버는 컨스트럭터즈 4위라는 창단 이래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02 시즌 성적은 드라이버즈 9위. 뒤이어 라이코넨은 안식년을 보낸 뒤 레이스 활동 중단을 선언한 미카 하키넨의 바통을 이어받아 그랑프리 명문 맥라렌으로 자리를 옮겼다. 23세, F1 데뷔 1년 만에 거머쥔 행운이었다.

맥라렌에서도 잘 뛰었다. 테스트 주행 때부터 경험이 풍부한 데이빗 쿨사드에 전혀 밀리지 않는 빠른 달리기를 보였고, 프랑스에서는 우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기도 했다. 선두에 서서 그대로 달리기만 하면 표창대 정상에 설 수 있었지만, 노면에 뿌려진 오일에 미끄러지면서 2위에 만족해야 했다. 10개 GP에서의 리타이어에도 불구하고 시리즈 6위의 무난한 성적으로 맥라렌에서의 첫 시즌을 마쳤다.

2003년 마침내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 다가왔다. 말레이시아 그랑프리를 승리로 장식한 것이다. 우승 정도가 아니라 시즌 마지막까지 슈마허와 챔피언 자리를 다투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슈마허에게 영광이 돌아갔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7, 2, 5위. 다소 주춤거린 3년을 보낸 키미는 2007년 슈마허가 떠난 페라리의 남은 자리로 옮기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페라리에서의 첫 해는 밝게 빛났다. 붉은색 오버롤을 입고 개막전을 승리로 장식한 뒤 시즌 총 6승을 기록하면서 F1 데뷔 7년 만에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차지한 것이다. 맥라렌의 신성으로 떠오르던 루이스 해밀턴과의 점수 차이는 겨우 1점. 브라질 인터라고스 표창대에서 아이스맨은 모처럼 밝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후 맥라렌과 브라운GP에 밀려 주춤거린 키미는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로 잠시 자리를 옮겨 또 다른 삶을 살았다. 그러나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 뒤에 가려진 강인한 승부 근성으로 무장한 키미는 올해 다시 그랑프리 팬들 앞으로 돌아왔다.

자우버, 맥라렌, 페라리에 이어 키미 라이코넨을 불러들인 팀은 로터스. 2년 계약 첫 시즌 출발은 예상보다 좋은 편이다. 2012 F1 6전 모나코 그랑프리까지의 성적은 드라이버즈 6위. 중국 상하이 서킷을 제외한 모든 그랑프리에서 포인트를 따내며 예상보다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캐나다 GP를 앞둔 시점에서 시즌 초보다 더 강한 자신감을 드러낸 키미가 포디엄 정상에 설 수 있을까? 현재까지 드러난 전력으로 볼 때 로터스와 키미에게 흐르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키미 라이코넨

국적 핀란드

생년월일 1979년 10월 17일

F1 데뷔 2001년 호주 그랑프리

그랑프리 출전 163GP

챔피언십 포인트 630점

우승 18승

폴포지션 16회

포디엄 64회

드라이버즈 챔피언 2007

※ 2012 F1 모나코 GP까지

박기현 기자 gokh3@naver.com

F1을 빛낸 핀란드 드라이버②미카 하키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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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케 로스베르크에 이어 그랑프리 정상에 오른 핀란드 출신 드라이버는 미카 하키넨이다. 98~99년 F1 월드 챔피언, 미카 하키넨은 1968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났다. 조용한 성격의 그가 레이스에 데뷔한 것은 6세 때인 1974년. 여느 드라이버와 마찬가지로 카트를 통해 스피드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13년 동안 카트를 타면서 거둔 성적은 핀란드 챔피언십 5회 우승. 카트에서 기본기를 충실히 닦은 하키넨은 이듬해 포뮬러 포드에 진출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고국 핀란드와 스위스,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레이스에서 우승컵을 따내며 유럽 시리즈 7위를 기록했다.

이듬해 GM 로터스 시리즈에 진출한 미카는 89년부터 F3로 영역을 넓혔다. 데뷔 첫해 성적은 영국 F3 시리즈 7위. 만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었지만 90년 영국 F3를 평정하는데 충분한 밑거름이 되었다. 영국 남동부 주에 자리 잡은 웨스트 서리 팀 소속으로 90년을 맞은 하키넨은 시즌 9승을 거두며 F3 정상을 밟았다. 이밖에 마카오, 이태리, 독일 등 F3 최고 무대에서 우승컵을 낚아 F1행 직행열차에 몸을 싣게 되었다. 1991년, 포뮬러 드라이버들의 꿈인 F1 시트를 차지한 것이다.

미하엘 슈마허 제압한 플라잉 핀

하키넨의 F1 고향은 로터스였다. 그러나 미국 그랑프리를 통해 F1에 데뷔한 그는 16전 동안 겨우 2점을 얻는데 그쳤다. 92년에도 눈에 띄는 기록을 뽑지 못한 하키넨은 11포인트, 드라이버즈 8위로 F1에서의 2년을 보냈다.

93년 맥라렌 팀 테스트 드라이버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안드레티를 대신해 맥라렌 포드 머신의 핸들을 잡았다. 당시 맥라렌의 에이스 드라이버는 서킷의 천재 아일톤 세나. 맥라렌 유니폼을 입고 뛴 첫 포르투갈 그랑프리에서 세나에 앞서 예선 3위를 기록했다. 결승에서는 32랩째 일어난 충돌사고로 아깝게 리타이어했지만, 인상 깊은 주행을 펼쳐 파란을 일으켰다.

라이벌 미하엘 슈마허와의 격돌은 이 게임에서 처음 이뤄졌다. 베네통의 새별 슈마허는 93년 F1 14전을 우승으로 장식하며 하키넨과의 첫 대결을 승리로 장식했다. 그러나 하키넨의 공격도 만만치 않아 이어진 일본 그랑프리에서 F1 데뷔 후 첫 표창대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성적은 당시 F1의 정상 세나와 프로스트에 이은 3위.

94년 마크 불룬델과 한 조를 이룬 하키넨은 맥라렌-푸조 머신으로 15GP에 출전해 시리즈 4위를 기록했다. 이해 드라이버즈 챔피언인 미하엘 슈마허에 한참 뒤졌지만 6차례 표창대를 밟아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탄탄대로에 접어든 하키넨에게 95년은 시련기였다. 시즌 마지막 호주 그랑프리 예선에서 시속 240km의 속도로 타이어 장벽을 들이받는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연석을 타고 튀어 오른 하키넨의 머신은 빙그르르 돌면서 15m를 날아갔고, 충격의 여파는 하키넨의 숨통을 조였다. 싸늘해진 관중석은 한순간 94년 세나의 목숨을 앗아간 이몰라 서킷을 연상시켰지만, 구급대의 기민한 응급조치로 더 이상의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사고로 하키넨은 머리를 심하게 다쳤으나, 다행히 빠르게 회복되었다.

96년 개막전에 건강한 모습으로 되돌아온 그는 96, 97년 5위와 6위를 거두며 상위권에 머물렀다. 그러나 더 이상의 진전 없이 맥라렌에서의 2년을 마칠 무렵, 하키넨은 꿈에 그리던 표창대 정상을 밟았다. 97년 F1 최종전 유럽 그랑프리에서 동료 쿨사드와 함께 원투승을 거두었다. 이때의 승리는 앞서 달리던 슈마허와 빌르너브의 충돌로 인해 굴러 들어온 것이었지만 하키넨에게는 잊지 못할 우승이었다.

드디어 98년, 시리즈 16전 중 8GP에서 우승한 미카 하키넨은 세계 모터스포츠 정상을 정복했다. F1에 첫발을 디딘 이후 8년, 그랑프리 출전 112전만의 쾌거였다. 하키넨의 시리즈 우승은 98년 11월 1일 일본 스즈카에서의 극적인 우승으로 더욱 빛났다. 시즌 막판까지 미하엘 슈마허와 접전을 벌인 그는 최종전 피니시라인을 제일 먼저 밟아 라이벌의 콧대를 눌렀다. 결국 챔피언십 포인트 100점을 따낸 하키넨은 뒤따르던 슈마허(86점)를 여유 있게 누르고 감격스러운 드라이버즈 챔피언의 영예를 안았다. 그의 드라이버즈 챔피언은 핀란드인으로는 두 번째. 스승이었던 케케 로즈베르크에 이어 16년 만에 F1을 평정해 ‘핀란드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99년 F1 16전을 다시 한 번 제압한 하키넨은 2년 연속 그랑프리 우승을 일군 7명(이후 미하엘 슈마허와 페르난도 알론소, 세바스찬 베텔도 연패를 기록했다)의 드라이버에 이름을 올렸다. 시즌 5승에 챔피언십 포인트는 76점. 98년에 비해 떨어지는 성적이었지만 극적인 우승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라이벌 슈마허가 사고로 6경기를 쉬는 사이 페라리의 에디 어바인과 손에 땀을 쥐는 전투 끝에 얻은 월드 챔피언이었기 때문이다.

99년 우승 역시 최종전 일본 그랑프리에서 판가름났다. 반드시 우승해야 드라이버즈 챔피언 2연패를 거둘 수 있는 절박한 상황. 슈마허에 밀려 예선 2위를 기록한 하키넨은 출발과 동시에 번개작전을 펼쳐 선두에 나섰다. 이후 53랩 내내 스즈카 서킷을 휘어잡은 그는 슈마허를 5초 차이로 따돌리고 1위로 피니시라인을 갈라 스탠드를 가득 메운 관중을 열광시켰다. ‘페라리가 유리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은 하키넨은 16전 중 11회 폴포지션을 따내는 대기록과 함께 F1 2연패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미카 하키넨의 2000년은 밝지 않았다. 시즌 4승, 종합 2위의 성적만 놓고 보면 나무랄 데 없었지만 슈마허의 거센 공격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슈마허가 일찌감치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확정지은 것과 달리 시리즈 5위로 한 걸음 물러났고, 이후 2002년 잠정 은퇴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트랙을 떠났다. 맥라렌을 떠나면서 고국 핀란드의 기대주 키미 라이코넨을 추천한 하키넨은 플라잉 핀(Flying Finn)의 명성을 팬들의 가슴에 남긴 채 F1 커리어를 접었다.

미카 하키넨

국적 핀란드

생년월일 1968년 9월 28일

F1 데뷔 1991년 미국 그랑프리

그랑프리 출전 165GP

챔피언십 포인트 420점

우승 20승

폴포지션 26PP

포디엄 51회

드라이버즈 챔피언 1998, 1999

박기현 gokh3@naver.com ㅣ 사진 LAT Photographic

F1을 빛낸 핀란드 드라이버①케케 로스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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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핀란드는 세 명의 F1 챔피언을 보유하고 있다. 케케 로스베르크, 미카 하키넨, 키미 라이코넨이 그 주인공. 영국, 프랑스,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F1 드라이버(7명)를 배출했지만, 핀란드 출신 케케와 미카, 그리고 키미는 세계 곳곳에 수많은 팬을 거느린 명 드라이버로 꼽을 만하다.

당대의 거장 디디에 피로니와 알랭 프로스트를 제치고 82년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차지한 케케, 미하엘 슈마허의 추격을 제압하고 98~99년 연속 챔피언에 오른 미카, 2007년 루키 돌풍의 주역 루이스 해밀턴을 1점 차이로 따돌린 키미……. 이들 셋은 F1에서 자국 핀란드의 이름을 드높인 삼인방으로 손색이 없다. 뚜렷한 개성과 눈에 띄는 실력을 갖춘 세 드라이버 중 먼저 케케 로스베르크의 커리어를 따라가 보자.

핀란드 출신 첫 F1 드라이버즈 챔피언

케케 로스베르크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포뮬러 드라이버의 길을 선택한 그에게 숱한 난관이 밀려들었지만, 세계 정상을 향한 의지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좌절과 성공, 그리고 또 다른 내리막 앞에서 당당했던 케케……. 82년 F1 챔피언 케케 로스베르크의 열정은 지금도 핀란드 출신 드라이버들의 가슴에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듯하다.

키누엔과 코자로비츠키에 이어 핀란드인으로는 세 번째로 F1 드라이버가 된 케케는 1948년 12월 6일 핀란드 수도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카트와 엔트리 포뮬러를 거친 그는 1977년 F2에서 핀란드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우승컵을 차지했다. 이어 이듬해 영국 실버스톤 인터내셔널 트로피에서 우승하며 F1 관계자들에게 주목받은 케케는 신생 시어도어 팀에 들어가는 행운을 안았다.

F1 데뷔전은 1978년 3월 4일, 키얄라미에서 열린 남아프리카 그랑프리. 성적은 신통치 않아 24그리드에서 출발해 15랩을 달린 뒤 리타이어했다. 이후 연이어 경주차 트러블에 시달린 그는 시어도어를 떠나 ATS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이적 팀에서도 뚜렷한 전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세 차례 그랑프리 중 2전을 완주했지만, 성적은 여전히 하위권을 맴돌 뿐이었다.

78년 최고 기록은 울프 팀에서의 10위. 2년 동안 시어도어, ATS, 울프 등을 전전한 케케는 80년 피티팔디 팀에 들어가면서 드라이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개막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3위로 첫 포디엄을 밟은 것이다. 그러나 한 순간 상승세로는 다가오는 먹구름을 피할 수 없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머신으로 고전하던 케케는 81년 그랑프리를 마치지 못하고 팀을 떠날 수밖에 없는 비운에 빠졌다.

3년 동안 중하위 팀에 머문 케케에게 프랭크 윌리엄즈는 구원의 신이었다. 윌리엄즈 세컨드 드라이버로 카를로스 로이테만과 짝을 이룬 그는 넘버 원 드라이버가 떠나자 곧 팀의 리더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포드 코스워스 엔진을 얹은 윌리엄즈 FW08을 타고 출전한 82년은 챔피언 타이틀을 향한 꿈을 키워나간 해였다. 그의 라이벌은 선두에서 차근차근 점수를 모아가던 페라리의 디디에 피로니. 시즌 4경기만을 남겨둔 독일 그랑프리까지 단 한 번의 우승도 거두지 못했고, 선두와의 점수 차이는 12점으로 벌어져 그의 꿈은 흐려지는 듯했다.

그러나 선두 피로니가 호켄하임에서의 사고로 더 이상 시리즈에 참가하지 못하면서 행운의 여신은 케케에게 미소를 보냈다. 이후 스위스에서 생애 첫 F1 우승을 차지한 그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최종전에서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확정지었다. 81년에 단 1점도 획득하지 못한 드라이버가 불과 1승으로 챔피언에 오르게 된 셈이다. 핀란드 출신 최초의 F1 월드 챔피언이다.

자연흡기 시대가 막을 내리고 터보 시대로 돌입한 F1 타이틀 쟁탈전은 혼돈의 시기였다. 신뢰성이 떨어지는 엔진으로 83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개인 통산 2승을 기록했지만 시리즈 성적은 5위에 그쳤다. 1984년 윌리엄즈가 혼다 터보 엔진을 도입하면서 기대를 걸었지만, 역시 머신 트러블로 고단한 1년을 보냈다. 2승을 기반으로 1985년 시리즈를 3위로 마친 케케에게 더 이상 찬란한 시기는 다가오지 않았다. 맥라렌으로 옮긴 86년 모나코에서 2위 표창대에 선 것을 제외하면 연이어 터진 머신 트러블로 고전하기 일쑤였다. 그런 그에게 남은 선택은 은퇴. 호주 최종전에서 팀 동료 알랭 프로스트가 우승할 수 있도록 지원한 케케는 레이스 종료 20랩을 남기고 리타이어했다.

은퇴한 케케 로스베르크는 1992부터 95년까지 독일투어링카챔피언십에서 활동하며 핀란드의 젊은 드라이버 육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의 뒤를 이어 핀란드 출신 F1 챔피언이 된 미카 하키넨이 대표적인 본보기라 할 수 있다. 그의 아들 니코 로스베르크는 현재 메르세데스 팀에서 F1 드라이버로 활동하고 있다. 좁은 길을 선택해 조국 핀란드에 첫 F1 타이틀을 바친 케케 로스베르크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과감히 F1 트랙을 내려왔지만, 그의 열정은 핀란드의 후예들을 통해 여전히 F1 서킷을 달리고 있다.

케케 로스베르크

국적 핀란드

생년월일 1948년 12월 6일

F1 데뷔 1978년 남아프리카 그랑프리

그랑프리 출전 114GP

챔피언십 포인트 159.5점

우승 5승

폴포지션 5PP

포디엄 17회

드라이버즈 챔피언 1982년

박기현 gokh3@naver.com ㅣ 사진 LAT Photograp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