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동차경주협회(KARA)가 주관한 ‘2011 모터스포츠인의 밤’ 행사가 12월 20일(화) 서울 서초구 양재동 L타워 그랜드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KARA는 향후 4년 동안 추진할 비전을 발표하고, 모터스포츠인들의 화합을 강조했다.
KARA, 모터스포츠 대중화 위해 매진할 터
한국자동차경주협회(KARA)가 주관한 ‘2011 모터스포츠인의 밤’ 행사가 12월 20일(화) 서울 서초구 양재동 L타워 그랜드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KARA는 향후 4년 동안 추진할 비전을 발표하고, 모터스포츠인들의 화합을 강조했다.
카무이 고바야시 헬멧, 1만9천달러에 팔려
자우버 F1이 소속팀 드라이버 카무이 고바야시와 6인조 하드록 그룹 린킨파크가 공동으로 진행한 자선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밝혔다.
MJ 카그래피 이명재 실장
그의 얼굴에서는 언제나 선한 이미지가 풍긴다. 사람 좋은 웃음이 몸에 밴 듯…, 늘 부드러운 얼굴로 세상과 마주하는 그에게서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손에 카메라가 들리면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웃음기 빠진 눈빛에 스민 ‘진중함’이 카메라 렌즈에 투영되는 찰나와 마주하는 순간이기에….
패트릭 헤드, 윌리엄즈 엔지니어링 디렉터 떠난다
윌리엄즈 F1이 패트릭 헤드가 더 이상 팀 엔지니어링 디렉터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윌리엄즈 그랑프리 홀딩스 PLC(WGF1)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패트릭은 팀 엔지니어링 디렉터 자리를 떠나 윌리엄즈 파워(Williams Power Limited.) 디렉터로 옮긴다. 이에 따라 앞으로 패트릭은 F1 머신 셋업에는 더 이상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F1 최다 연승 1위 드라이버는?
역대 F1 1, 2위 최소 시간차는?
1950년, 포뮬러원 챔피언십이 정식으로 출범한 이후 현재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는 세월이 흘러도 깨지지 않을 F1 최초의 월드 챔피언 기록 같은 영광스러운 이름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최단 시간 리타이어 같은 웃지 못 할 기록들도 있다.
단순히 패스티스트랩이나 서킷 랩 기록을 살펴보면 엔진과 에어로다이내믹 기술의 발달로 후대의 드라이버들이 과거의 영웅들을 뛰어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첨단 기술로도 넘어설 수 없는 기록들 또한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오히려 기술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드라이버들의 역량에 따라 작성된 기록들이 더욱 빛나는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1950년부터 현재까지, F1의 영웅들이 쌓아올린 ‘기록의 전당’속으로 들어가 보자.
역대 최단 1~2위 시간차는 1972년 이태리 그랑프리에서의 0.01초
2002년 미국 그랑프리에서는 미하엘 슈마허가 연출한 해프닝으로 좀처럼 보기 어려운 1/100초 승부가 펼쳐졌다. 9월 29일, 15만 관중이 모인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슈마허를 선두로 1, 2그리드를 차지한 페라리는 윌리엄즈의 두 머신이 서로 부딪히는 어이없는 사고로 일찌감치 라이벌을 따돌리고 73랩을 편안하게 달렸다.
선두로 달리던 슈마허는 마지막 코너에서 갑자기 바깥쪽으로 돌아나가고, 오스트리아에서의 양보(루벤스 바리첼로가 1위 자리를 팀 동료 미하엘 슈마허에게 선두를 양보했다)에 화답이라도 하듯 바리첼로를 안쪽 라인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마치 드래그레이스를 펼치듯 나란히 직선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결과는 0.011초 차이로 바리첼로 역전승이었다.
결과 발표 후 슈마허는 “바리첼로와 함께 결승선을 통과해 새로운 기록을 만들고 싶었다”고 이야기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이미 확정지은 여유 때문이었는지, 신기록을 갱신에 재미가 붙어서인지, 슈마허의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오랜만에 F1에서 찰나의 승부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페라리의 쌍두마차는 피터 게딘과 로니 피터슨이 수립한 F1의 최소 시간차 1, 2위 기록을 깨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짧은 시간 차이로 1, 2위가 갈린 레이스는 이태리 몬자에서 나왔다. 과거 몬자 서킷은 고속 코스로 명성이 높았고, 기록의 주인공 피터 게딘은 11그리드에 섰지만 폴시터 크리스 아몽과의 차이는 단 1초에 불과했다. 레이스가 시작되자 10여 대가 꼬리를 물며 선두그룹을 형성해 우승자를 미리 점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고속 코스를 견디지 못하고 많은 드라이버들이 리타이어한 가운데 피터 게딘은 선두그룹으로 올라섰고,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둔 54랩에서는 피터슨에 이어 3위를 달렸다. 게딘은 피터슨이 갈 길을 가로막자 풀밭으로 뛰어들어 추월에 성공했다. 하지만 마지막 코너에서는 뒤늦은 브레이킹으로 타이어에서 하얀 연기를 피워 올렸고, 어렵게 균형을 잡은 그와 함께 5명이 무리를 지어 결승선을 통과했다. 결과적으로 우승을 거머쥔 드라이버는 게딘이었다. 2위 피터슨과는 겨우 0.01초 차이. 1~5위까지 0.61초안에 모두 결승선을 통과하는 F1 사상 초유의 레이스였다.
1986년 새로 만들어진 스페인 헤레즈에서 나이젤 만셀은 마지막 9랩을 남기고 타이어 교환으로 도박을 걸었지만 만셀의 역전극은 아쉽게 실패하고 0.014초 차이로 아일톤 세나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주가 1, 2위간 시간차에서 3번째 자리에 올라 있다.
F1 통산 0.1초 이하의 승부는 모두 7차례. 반면 촌음은커녕 선두와 한 바퀴 이상 차이를 보이는 다소 싱거운 승부들도 있었다. 1969년 스페인 몬주익 파크에서 재키 스튜어트는 선두권 드라이버들의 잇따른 리타이어로 2위 브루스 맥라렌을 무려 2바퀴 차이로 따돌리고 결승선을 밟았다.
또한 1995년 호주 애들레이드에서는 계속되는 사고로 28명 중 예선 2~11위를 포함한 16명이 리타이어하는 서바이벌 게임이 펼쳐졌다. 폴포지션에서 출발한 데이먼 힐은 경쟁자들이 사라지자 독주를 펼치며 올리비에 파니스보다 2바퀴 앞서 골인했다. 이밖에도 역대 F1 경기 중 1, 2위가 1바퀴 차이로 벌어진 경우는 무려 25번에 이른다.
F1 1~2위 최소 시간차 순위
1 피터 게딘 vs 로니 피터슨, 0.010, 이태리 몬자(1971)
2 루벤스 바리첼로 vs 미하엘 슈마허, 0.011, 미국 인디애나폴리스(2002)
3 아일톤 세나 vs 나이젤 만셀, 0.014, 스페인 헤레즈(1986)
4 엘리오 안젤리스 vs 케케 로스베르크, 0.050, 오스트리아 A1링(1982)
5 재키 스튜어트 vs 요헨 린트, 0.080, 이태리 몬자(1969)
박기현 기자 gokh3@naver.com
기아 K5 레이싱카, 2012 북미 국제 오토쇼에 참가
기아자동차가 1월 9~22일까지 미국 디트로이트 코보센터에서 열리는 북미 국제 오토쇼에 K5 하이브리드(현지명 옵티마 하이브리드)와 K5 레이싱카 등 총 19대의 자동차를 전시한다.
F1 점수 제도 어떻게 변해왔나?
1점 차이로 엇갈린 챔피언의 명암(1950~1980)
60년이 넘는그랑프리 역사에서 1점 차이로 챔피언의 명암이 갈린 그랑프리는 여덟 번이었다. 1958년에는 마이크 호손과 스털링 모스가 숙명의 대결을 펼쳤고, 페라리가 첫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1961년 드라이버즈 우승컵은 필 힐이 거머쥐었다.
페라리와 BRM의 접전이 돋보인 1964년에는 모터사이클 챔피언 출신 존 서티즈가 그레이험 힐을 따돌리고 역사적인 기록의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1976년 F1은 가장 극적인 시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제임스 헌트와 니키 라우다의 1점차 혈전이 그랑프리 팬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을 명승부로 기억되고 있다.
이밖에도F1 역사에서 피 말리는 혈전의 흔적을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가운데 단 1점 차이로 챔피언의 명암이 갈린 해는 여덟 번. 최종전 체커기가 나부끼는 순간에 다다라서야 우열을 가린 F1 역사 속 명승부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불사조 니키 라우다, 76년 불운 극복하고 77년 챔프 등극
1958년 F1은 반월과 쿠퍼, 페라리가 선두 경쟁에 뛰어들었다. 마세라티가 철수한 뒤 이들 팀은 마이크 호손, 스털링 모스, 토니 브룩스를 앞세워 처음 생긴 컨스트럭터즈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1957년까지 다섯 차례 챔피언 트로피를 거머쥔 후앙 마누엘 판지오가 사라진 무대에서는 쿠퍼-클라이맥스를 타고 나온 모스가 먼저 웃었다. 3년 연속 2위의 덫에 걸린 그에게 아르헨티나 개막전 우승은 서광과 같았다. 메르세데스, 페라리, 마세라티 팀에서 타이틀 3연패를 차지한 판지오의 그늘을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설의 드라이버, 스털링 모스는 이번에도 불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시리즈 최종 11전 카사블랑카 그랑프리를 승리로 장식했지만, 드라이버즈 정상의 자리는 마이크 호손이 차지했다. 챔피언과 2위의 운명을 가른 점수는 겨우 1점(호손 42점, 모스 41점). 4승으로 분전한 모스는 소속팀 반월의 컨스트럭터즈 우승에 위안을 삼았다.
잭 브라밤과 함께 쿠퍼 팀의 전성기(1959~60)가 막을 내리자 페라리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페라리에 첫 월드 타이틀(1961년)을 안긴 경주차는 디노 156. 2.5리터 포뮬러 시대가 막을 내리자 V6 1.5리터 엔진을 재빠르게 투입한 페라리는 필 힐과 볼프강 폰 트립스가 합작한 4승 덕에 로터스를 제치고 컨스트럭터즈 정상에 우뚝 섰다. 드라이버즈 경쟁의 라이벌 역시 페라리 듀오였다.
하지만 필 힐과 폰 트립스의 접전은 어이없는 사고로 끝을 맺었다. 그랑프리 역사에 커다란 상처로 남을 비극의 장은 이태리 몬자 뱅크 트랙. 폴포지션에서 출발한 폰 트립스는 짐 클라크와 뒤엉키면서 일어난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결국 몬자 우승자 필 힐(34점)이 미국 출신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라이버즈 챔피언에 올랐고, 시리즈 최종 미국 그랑프리 그리드에 나서지 못한 폰 트립스(33점)는 그랑프리 역사의 뒤안길에 이름을 묻었다.
1964년 F1에서는 같은 영국계 존 서티즈와 그레이엄 힐 사이에서 뜨거운 접전이 벌어졌다. 페라리와 BRM의 대표 주자로 나선 두 선수의 점수 차이 역시 1점. 10전 중 6전 합계 점수로 순위를 가른 64년 그랑프리에서 2승 포함 40점을 기록한 서티즈가 챔피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힐과 서티즈의 라이벌전은 멕시코시티에서 판가름났다. 최종전을 앞둔 미국 그랑프리까지의 점수는 힐(39점), 서티즈(34점), 클라크(30점) 순. 레이스가 시작되자마자 선두 힐이 득점권에서 사라지자 서티즈의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게다가 시즌 4승을 향해 순항하던 클라크마저 레이스 종료 2랩을 남겨두고 리타이어해 2위 체커기를 받은 서티즈가 굴러들어온 행운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역전 챔피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존 서티즈는 모터사이클과 F1 세계 타이틀을 모두 보유한 역사적인 인물로도 기록되었다. 2년 연속 우승을 노린 클라크는 그레이험 힐과 재키 스튜어트 듀오를 내세운 BRM을 제치고 팀 로터스에 두 번째 컨스트럭터 왕관을 씌워주었다.
1976년 F1은 가장 극적인 시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제임스 헌트(맥라렌, 69점)와 니키 라우다(페라리, 68점)의 1점차 혈전이 그랑프리 팬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을 명승부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75년 드라이버즈 챔피언 니키 라우다의 머신은 312T. 해체된 헤스키스 팀을 떠나 맥라렌에 들어간 제임스 헌트는 M23으로 첫 타이틀 도전에 나섰다. 두 드라이버의 첫 대결 결과는 라우다의 승리. 75년 마지막 라운드 미국 그랑프리를 폴투윈으로 장식한 라우다는 충돌 사고로 무너진 헌트를 제치고 먼저 1승을 낚았다.
헌트의 불운은 2전에서도 재현되었다. 개막전에 이어 2전 연속 폴포지션을 차지했지만, 예선 2위 라우다가 표창대 정상을 밟았다. 벨기에와 모나코, 영국 그랑프리 우승컵이 라우다의 품으로 들어가자 76년 드라이버즈 판세가 급격하게 기우는 듯했다.
그러나 프랑스 GP 우승으로 숨을 고른 헌트가 최종전을 마친 뒤 챔피언의 영예를 안았다. 라우다의 불행이 가져다준 행운 덕이다.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일어난 사고로 중화상을 입은 라우다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그랑프리에만 참가하지 못했을 뿐, 놀랍도록 빠르게 회복해 이태리 몬자 서킷에 모습을 드러냈다. 복귀전 성적은 페테르손, 레가조니, 라피테에 이어 4위.
이후 캐나다 모스포르와 미국 왓킨스 글렌 서킷을 제압한 헌트는 창설전으로 열린 일본(후지)에서 숙명의 라이벌 대결을 벌였다. 선두 라우다와 2위 헌트의 점수 차이는 3점. 예선 3위 라우다가 시작부터 대열 선두로 올라서는 저력을 발휘했지만, 안드레티와 드파예 옆에서 3위 트로피를 차지한 헌트가 1점차 챔피언의 감격을 누렸다.
이듬해 라우다는 5위로 구른 헌트를 멀리 따돌리고 두 번째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낚아챘다. 최악의 부상을 극복한 그의 인간 승리에 전 세계 F1 팬들은 ‘불사조’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박기현 기자 gokh3@naver.com
페라리 마사, 2013년 시트 지킬 수 있을까?
페라리 팀 오너 루카 디 몬테제몰로가 최근 의미심장한 발언을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펠리페 마사를 대체할 드라이버를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을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