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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7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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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을 빛낸 핀란드 드라이버①케케 로스베르크

북유럽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핀란드는 세 명의 F1 챔피언을 보유하고 있다. 케케 로스베르크, 미카 하키넨, 키미 라이코넨이 그 주인공. 영국, 프랑스,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F1 드라이버(7명)를 배출했지만, 핀란드 출신 케케와 미카, 그리고 키미는 세계 곳곳에 수많은 팬을 거느린 명 드라이버로 꼽을 만하다.

당대의 거장 디디에 피로니와 알랭 프로스트를 제치고 82년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차지한 케케, 미하엘 슈마허의 추격을 제압하고 98~99년 연속 챔피언에 오른 미카, 2007년 루키 돌풍의 주역 루이스 해밀턴을 1점 차이로 따돌린 키미……. 이들 셋은 F1에서 자국 핀란드의 이름을 드높인 삼인방으로 손색이 없다. 뚜렷한 개성과 눈에 띄는 실력을 갖춘 세 드라이버 중 먼저 케케 로스베르크의 커리어를 따라가 보자.

핀란드 출신 첫 F1 드라이버즈 챔피언

케케 로스베르크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포뮬러 드라이버의 길을 선택한 그에게 숱한 난관이 밀려들었지만, 세계 정상을 향한 의지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좌절과 성공, 그리고 또 다른 내리막 앞에서 당당했던 케케……. 82년 F1 챔피언 케케 로스베르크의 열정은 지금도 핀란드 출신 드라이버들의 가슴에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듯하다.

키누엔과 코자로비츠키에 이어 핀란드인으로는 세 번째로 F1 드라이버가 된 케케는 1948년 12월 6일 핀란드 수도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카트와 엔트리 포뮬러를 거친 그는 1977년 F2에서 핀란드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우승컵을 차지했다. 이어 이듬해 영국 실버스톤 인터내셔널 트로피에서 우승하며 F1 관계자들에게 주목받은 케케는 신생 시어도어 팀에 들어가는 행운을 안았다.

F1 데뷔전은 1978년 3월 4일, 키얄라미에서 열린 남아프리카 그랑프리. 성적은 신통치 않아 24그리드에서 출발해 15랩을 달린 뒤 리타이어했다. 이후 연이어 경주차 트러블에 시달린 그는 시어도어를 떠나 ATS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이적 팀에서도 뚜렷한 전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세 차례 그랑프리 중 2전을 완주했지만, 성적은 여전히 하위권을 맴돌 뿐이었다.

78년 최고 기록은 울프 팀에서의 10위. 2년 동안 시어도어, ATS, 울프 등을 전전한 케케는 80년 피티팔디 팀에 들어가면서 드라이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개막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3위로 첫 포디엄을 밟은 것이다. 그러나 한 순간 상승세로는 다가오는 먹구름을 피할 수 없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머신으로 고전하던 케케는 81년 그랑프리를 마치지 못하고 팀을 떠날 수밖에 없는 비운에 빠졌다.

3년 동안 중하위 팀에 머문 케케에게 프랭크 윌리엄즈는 구원의 신이었다. 윌리엄즈 세컨드 드라이버로 카를로스 로이테만과 짝을 이룬 그는 넘버 원 드라이버가 떠나자 곧 팀의 리더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포드 코스워스 엔진을 얹은 윌리엄즈 FW08을 타고 출전한 82년은 챔피언 타이틀을 향한 꿈을 키워나간 해였다. 그의 라이벌은 선두에서 차근차근 점수를 모아가던 페라리의 디디에 피로니. 시즌 4경기만을 남겨둔 독일 그랑프리까지 단 한 번의 우승도 거두지 못했고, 선두와의 점수 차이는 12점으로 벌어져 그의 꿈은 흐려지는 듯했다.

그러나 선두 피로니가 호켄하임에서의 사고로 더 이상 시리즈에 참가하지 못하면서 행운의 여신은 케케에게 미소를 보냈다. 이후 스위스에서 생애 첫 F1 우승을 차지한 그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최종전에서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확정지었다. 81년에 단 1점도 획득하지 못한 드라이버가 불과 1승으로 챔피언에 오르게 된 셈이다. 핀란드 출신 최초의 F1 월드 챔피언이다.

자연흡기 시대가 막을 내리고 터보 시대로 돌입한 F1 타이틀 쟁탈전은 혼돈의 시기였다. 신뢰성이 떨어지는 엔진으로 83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개인 통산 2승을 기록했지만 시리즈 성적은 5위에 그쳤다. 1984년 윌리엄즈가 혼다 터보 엔진을 도입하면서 기대를 걸었지만, 역시 머신 트러블로 고단한 1년을 보냈다. 2승을 기반으로 1985년 시리즈를 3위로 마친 케케에게 더 이상 찬란한 시기는 다가오지 않았다. 맥라렌으로 옮긴 86년 모나코에서 2위 표창대에 선 것을 제외하면 연이어 터진 머신 트러블로 고전하기 일쑤였다. 그런 그에게 남은 선택은 은퇴. 호주 최종전에서 팀 동료 알랭 프로스트가 우승할 수 있도록 지원한 케케는 레이스 종료 20랩을 남기고 리타이어했다.

은퇴한 케케 로스베르크는 1992부터 95년까지 독일투어링카챔피언십에서 활동하며 핀란드의 젊은 드라이버 육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의 뒤를 이어 핀란드 출신 F1 챔피언이 된 미카 하키넨이 대표적인 본보기라 할 수 있다. 그의 아들 니코 로스베르크는 현재 메르세데스 팀에서 F1 드라이버로 활동하고 있다. 좁은 길을 선택해 조국 핀란드에 첫 F1 타이틀을 바친 케케 로스베르크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과감히 F1 트랙을 내려왔지만, 그의 열정은 핀란드의 후예들을 통해 여전히 F1 서킷을 달리고 있다.

케케 로스베르크

국적 핀란드

생년월일 1948년 12월 6일

F1 데뷔 1978년 남아프리카 그랑프리

그랑프리 출전 114GP

챔피언십 포인트 159.5점

우승 5승

폴포지션 5PP

포디엄 17회

드라이버즈 챔피언 1982년

박기현 gokh3@naver.com ㅣ 사진 LAT Photograp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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