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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2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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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점 차이로 엇갈린 챔피언의 명암(1950~1980)

60년이 넘는그랑프리 역사에서 1점 차이로 챔피언의 명암이 갈린 그랑프리는 여덟 번이었다. 1958년에는 마이크 호손과 스털링 모스가 숙명의 대결을 펼쳤고, 페라리가 첫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1961년 드라이버즈 우승컵은 필 힐이 거머쥐었다.

페라리와 BRM의 접전이 돋보인 1964년에는 모터사이클 챔피언 출신 존 서티즈가 그레이험 힐을 따돌리고 역사적인 기록의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1976년 F1은 가장 극적인 시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제임스 헌트와 니키 라우다의 1점차 혈전이 그랑프리 팬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을 명승부로 기억되고 있다.

이밖에도F1 역사에서 피 말리는 혈전의 흔적을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가운데 단 1점 차이로 챔피언의 명암이 갈린 해는 여덟 번. 최종전 체커기가 나부끼는 순간에 다다라서야 우열을 가린 F1 역사 속 명승부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불사조 니키 라우다, 76년 불운 극복하고 77년 챔프 등극

1958년 F1은 반월과 쿠퍼, 페라리가 선두 경쟁에 뛰어들었다. 마세라티가 철수한 뒤 이들 팀은 마이크 호손, 스털링 모스, 토니 브룩스를 앞세워 처음 생긴 컨스트럭터즈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1957년까지 다섯 차례 챔피언 트로피를 거머쥔 후앙 마누엘 판지오가 사라진 무대에서는 쿠퍼-클라이맥스를 타고 나온 모스가 먼저 웃었다. 3년 연속 2위의 덫에 걸린 그에게 아르헨티나 개막전 우승은 서광과 같았다. 메르세데스, 페라리, 마세라티 팀에서 타이틀 3연패를 차지한 판지오의 그늘을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설의 드라이버, 스털링 모스는 이번에도 불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시리즈 최종 11전 카사블랑카 그랑프리를 승리로 장식했지만, 드라이버즈 정상의 자리는 마이크 호손이 차지했다. 챔피언과 2위의 운명을 가른 점수는 겨우 1점(호손 42점, 모스 41점). 4승으로 분전한 모스는 소속팀 반월의 컨스트럭터즈 우승에 위안을 삼았다.

잭 브라밤과 함께 쿠퍼 팀의 전성기(1959~60)가 막을 내리자 페라리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페라리에 첫 월드 타이틀(1961년)을 안긴 경주차는 디노 156. 2.5리터 포뮬러 시대가 막을 내리자 V6 1.5리터 엔진을 재빠르게 투입한 페라리는 필 힐과 볼프강 폰 트립스가 합작한 4승 덕에 로터스를 제치고 컨스트럭터즈 정상에 우뚝 섰다. 드라이버즈 경쟁의 라이벌 역시 페라리 듀오였다.

하지만 필 힐과 폰 트립스의 접전은 어이없는 사고로 끝을 맺었다. 그랑프리 역사에 커다란 상처로 남을 비극의 장은 이태리 몬자 뱅크 트랙. 폴포지션에서 출발한 폰 트립스는 짐 클라크와 뒤엉키면서 일어난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결국 몬자 우승자 필 힐(34점)이 미국 출신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라이버즈 챔피언에 올랐고, 시리즈 최종 미국 그랑프리 그리드에 나서지 못한 폰 트립스(33점)는 그랑프리 역사의 뒤안길에 이름을 묻었다.

1964년 F1에서는 같은 영국계 존 서티즈와 그레이엄 힐 사이에서 뜨거운 접전이 벌어졌다. 페라리와 BRM의 대표 주자로 나선 두 선수의 점수 차이 역시 1점. 10전 중 6전 합계 점수로 순위를 가른 64년 그랑프리에서 2승 포함 40점을 기록한 서티즈가 챔피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힐과 서티즈의 라이벌전은 멕시코시티에서 판가름났다. 최종전을 앞둔 미국 그랑프리까지의 점수는 힐(39점), 서티즈(34점), 클라크(30점) 순. 레이스가 시작되자마자 선두 힐이 득점권에서 사라지자 서티즈의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게다가 시즌 4승을 향해 순항하던 클라크마저 레이스 종료 2랩을 남겨두고 리타이어해 2위 체커기를 받은 서티즈가 굴러들어온 행운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역전 챔피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존 서티즈는 모터사이클과 F1 세계 타이틀을 모두 보유한 역사적인 인물로도 기록되었다. 2년 연속 우승을 노린 클라크는 그레이험 힐과 재키 스튜어트 듀오를 내세운 BRM을 제치고 팀 로터스에 두 번째 컨스트럭터 왕관을 씌워주었다.

1976년 F1은 가장 극적인 시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제임스 헌트(맥라렌, 69점)와 니키 라우다(페라리, 68점)의 1점차 혈전이 그랑프리 팬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을 명승부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75년 드라이버즈 챔피언 니키 라우다의 머신은 312T. 해체된 헤스키스 팀을 떠나 맥라렌에 들어간 제임스 헌트는 M23으로 첫 타이틀 도전에 나섰다. 두 드라이버의 첫 대결 결과는 라우다의 승리. 75년 마지막 라운드 미국 그랑프리를 폴투윈으로 장식한 라우다는 충돌 사고로 무너진 헌트를 제치고 먼저 1승을 낚았다.

헌트의 불운은 2전에서도 재현되었다. 개막전에 이어 2전 연속 폴포지션을 차지했지만, 예선 2위 라우다가 표창대 정상을 밟았다. 벨기에와 모나코, 영국 그랑프리 우승컵이 라우다의 품으로 들어가자 76년 드라이버즈 판세가 급격하게 기우는 듯했다.

그러나 프랑스 GP 우승으로 숨을 고른 헌트가 최종전을 마친 뒤 챔피언의 영예를 안았다. 라우다의 불행이 가져다준 행운 덕이다.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일어난 사고로 중화상을 입은 라우다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그랑프리에만 참가하지 못했을 뿐, 놀랍도록 빠르게 회복해 이태리 몬자 서킷에 모습을 드러냈다. 복귀전 성적은 페테르손, 레가조니, 라피테에 이어 4위.

이후 캐나다 모스포르와 미국 왓킨스 글렌 서킷을 제압한 헌트는 창설전으로 열린 일본(후지)에서 숙명의 라이벌 대결을 벌였다. 선두 라우다와 2위 헌트의 점수 차이는 3점. 예선 3위 라우다가 시작부터 대열 선두로 올라서는 저력을 발휘했지만, 안드레티와 드파예 옆에서 3위 트로피를 차지한 헌트가 1점차 챔피언의 감격을 누렸다.

이듬해 라우다는 5위로 구른 헌트를 멀리 따돌리고 두 번째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낚아챘다. 최악의 부상을 극복한 그의 인간 승리에 전 세계 F1 팬들은 ‘불사조’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박기현 기자 gokh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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