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 모터스포츠 이벤트 포뮬러원(F1) 그랑프리. 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세계 3대 스포츠로 꼽히는 F1 그랑프리가 지난해에 이어 우리나라에 상륙해 열전 퍼레이드를 이어나갔다. 2011 시리즈 제16전(10월 14~16일) 무대는 전남 영암에 터를 잡은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IC). 싱가포르와 일본을 거쳐 온 12개 팀 드라이버 24명은 지난해보다 개선된 KIC에서 숨 막히는 순위 대결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루이스 해밀턴, 코리아 GP 예선 장악
‘비’와 코리아 그랑프리와의 인연은 올해도 멈추지 않았다. 2010 코리아 GP 레이스 시간은 2시간 48분 20.810초. 예상보다 거센 비바람이 전남 영암 일대를 휩쓴 탓에 55랩 결승은 출발 10분 만에 적기 중단되는 이변을 낳았고, 격랑을 뚫고 재개된 레이스는 우승 후보 세바스찬 베텔과 마크 웨버(레드 불)를 트랙의 제물로 삼켜버렸다.
어둠이 깔리기 직전, 8만 관중 앞에서 함박웃음을 지은 드라이버는 페르난도 알론소(페라리). 코리아 그랑프리 창설전을 승리로 장식한 알론소는 시들어가던 챔피언 경쟁의 불씨를 다시 지필 수 있었고, 레드 불 듀오와 벌인 드라마틱한 승부를 시즌 종착역까지 끌고 가는 뚝심을 발휘했다.
‘빗속의 제전’은 2011 시즌에도 이어질까? 10월 14일(금), 연습주행이 한창인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의 풍경은 일단 1년 전에 펼쳐진 어두운 그림을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폭우는 아니었지만, 희뿌연 물보라를 만들며 달리는 그랑프리카의 모습에서 수중전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러나 기우는 오래가지 않았다. 하루 사이에 표정을 바꾼 하늘에 물기가 사라져 10월 15일(토) 오후 2시부터 정상적인 드라이 컨디션에서 결승 그리드를 결정짓는 예선을 치를 수 있었다.
사상 두 번째 F1 코리아 그랑프리 예선은 2008년 월드 챔피언 루이스 해밀턴(맥라렌)이 휘어잡았다. 3개 예선 세션을 모두 장악하며 올 시즌 첫 폴포지션을 차지한 것이다. 개인통산 18번째 예선 1위. 지난해부터 2011 일본 그랑프리까지 톱그리드에 오르지 못한 루이스 해밀턴은 모처럼 좋은 기록으로 코리아 그랑프리 결승을 치르게 되었다.
브루노 세나(르노)의 트랙 공략으로 시작된 첫 번째 예선 탈락자는 HRT, 버진, 로터스 등 하위 세 팀 드라이버 6명과 F1 최다 출전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루벤스 바리첼로(윌리엄즈). 맥라렌 듀오가 1, 2위로 일찌감치 앞서나간 반면 세바스찬 베텔은 11위로 뒤처지며 다소 불안한 모습이었다.
두 번째 예선에서도 루이스 해밀턴이 가장 빨랐다. Q1과 달리 선두그룹으로 돌아온 베텔이 Q2 2위. 마크 웨버와 젠슨 버튼(맥라렌), 펠리페 마사(페라리), 페르난도 알론소에 이어 니코 로스베르크(메르세데스), 비탈리 페트로프(르노), 애드리안 수틸(포스 인디아), 디 레스타(포스 인디아)도 세 번째 예선에 진출할 수 있는 기록을 뽑았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상승세를 타고 있던 미하엘 슈마허(메르세데스)는 타이어 트러블에 덜미를 잡혀 Q2 종료 직전 12위로 밀려났다.
세 번째 예선의 히어로 역시 해밀턴. 2위 세바스찬 베텔보다 0.202초 빠른 랩타임을 작성한 해밀턴이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첫 폴포지션을 따냈다. 그의 팀 동료 젠슨 버튼은 3위. 마크 웨버는 네 번째 그리드를 예약했고, 페라리 동료 펠리페와 페르난도, 메르세데스의 새로운 기둥으로 성장하고 있는 니코 로스베르크가 그 뒤를 이어 예선 5~7위에 올랐다.
새로운 독일전차 베텔, 10승 고지 밟고 팀 타이틀 2연패 견인
10월 16일(일), 전남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1랩 5.615km, 55랩)에서 개최된 2011 F1 제16전 코리아 그랑프리는 새로운 독일전차 세바스찬 베텔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두 번째 그리드에서 출발한 베텔은 첫 랩에서 폴시터 루이스 해밀턴을 가볍게 제친 이후 쾌속질주를 거듭한 끝에 1위 체커기를 받았다. 2, 3위는 루이스 해밀턴과 마크 웨버. 예선 3위 젠슨 버튼은 한 계단 구른 4위를 기록했고, 페르난도 알론소와 펠리페 마사가 그 뒤를 이어 피니시라인을 갈랐다.
일요일 오후 3시, 먹구름이 낮게 깔린 날씨 속에서 시작된 코리아 그랑프리는 세바스찬 베텔의 강공으로 달아올랐다. 선두그룹 드라이버들의 출발은 모두 나무랄 데 없었다. 그러나 KIC 1~2코너를 돌아나갈 때까지 순조로운 페이스를 유지한 루이스는 1.2km 직선주로에서 순식간에 2위로 밀려났고, 번개작전을 펼친 베텔이 2랩부터 확실한 승기를 잡고 레이스 대열을 이끌어나갔다. 1랩 이후 재편된 톱3 드라이버는 베텔, 루이스, 웨버. 펠리페 마사와 알론소, 버튼, 니코, 페트로프가 상위 그룹을 형성한 가운데 이어진 코리아 그랑프리 초반전 순위는 첫 피트스톱이 시작된 14랩까지 바뀌지 않았다.
소강상태에 빠진 코리아 그랑프리는 17랩 들어 한 차례 격변에 휩싸였다. 선두그룹 드라이버들이 첫 피트스톱을 마친 상태에서 3~5위권(웨버, 마사, 알론소) 경쟁이 한층 가속화될 즈음, 한 순간 균형을 잃은 비탈리 페트로프가 미하엘 슈마허와 충돌하는 사고로 세이프티카가 투입된 것이다. 이 사고의 여파로 슈마허는 리타이어했고, 베텔 앞에서 레이스 대열을 이끈 세이프티카는 20랩까지 트랙을 누볐다. 21랩부터 다시 정상으로 돌아간 코리아 그랑프리에 더 이상의 이변은 없었다. 첫 랩에 움켜쥔 승기를 끝까지 지킨 베텔이 55랩 첫 체커기의 주인공으로 거듭난 것이다.
시작부터 줄곧 화끈하게 맞붙은 루이스 해밀턴과 마크 웨버의 2위 대결에서는 루이스가 웃었다. 48랩째 DRS 구간에서 웨버가 한 차례 추월에 성공했지만, 곧바로 재역전당하면서 2위 도약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페라리의 코리아 그랑프리 성적은 예상 수위를 크게 밑돌았다.
그리드 1, 2열을 라이벌 팀에 빼앗긴 채 결승에 돌입한 결과는 5, 6위. 지난해 우승자 페르난도 알론소가 팀 내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을 뿐이다. 반면 토로 로소 팀 하이메 알게수아리는 코리아 그랑프리를 7위로 마치며 올 시즌 다섯 번째 톱10에 드는 수확을 거두었다. 득점권 8~10위를 마무리한 드라이버는 니코, 세바스티앙 부에미, 폴 디 레스타.
2011 코리아 그랑프리를 우승으로 장식한 세바스찬 베텔의 드라이버즈 포인트는 349점. 벨기에, 이탈리아, 싱가포르 그랑프리에서의 3연승 이후 일본에서 잠시 3위로 밀린 베텔은 전남 영암 KIC에서 1승을 더해 올 시즌 총 10승 고지를 밟았다. 젠슨 버튼, 알론소, 웨버, 루이스로 압축된 드라이버즈 2위 대결에서는 근소한 점수 차이로 앞선 젠슨이 유리한 입장이다.
그러나 아직 3개 그랑프리가 남아 있어 시리즈 종착역에 다다라서야 2위 트로피의 주인공을 가릴 수 있을 전망이다. 컨스트럭터즈 1~3위는 가닥이 잡혔다. 코리아 그랑프리에서 1, 3위를 기록하며 40점을 쌓은 레드 불이 남은 그랑프리에 상관없이 2년 연속 팀 타이틀을 확정지었다. 맥라렌과 페라리의 2위 경쟁은 108점 앞선 맥라렌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
성공 가능성 높였지만, 미흡한 부분도 적지 않아
2회째를 맞이한 코리아 그랑프리는 표면적으로 매끄럽게 마무리되었다. 뒤늦은 서킷 완공, 어설픈 운영과 준비 부족이 맞물려 KIC를 찾은 16만 관중들에게 적지 않은 비난을 들은 지난해보다 한층 체계화된 모습을 보여준 덕분이다. 그러나 반대의견도 적지 않다. 기본 시설과 운영, 교통편의 개선, 늘어난 유료 관중 등은 창설전을 치를 때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는 것이 일반적이 평가지만, 미흡한 홍보와 여전히 부족한 고급 숙박시설, 비싼 숙식비 등은 코리아 그랑프리 운영진이 해결해야할 숙제로 남았다.
지난해 코리아 그랑프리를 치르면서 교통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F1 조직위원회 측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서해안 고속도로와 목포-광양고속도로를 연결하는 2번국도 대체우회도로(죽림 JC~서호IC), 국지도 49호선(영암 IC~P3 주차장) 임시 개통 등이 좋은 본보기. 환승주차장과 연계한 무료 셔틀버스 운행을 비롯해 고속버스와 KTX 증편, F1 테마열차 운행 등도 그랑프리 팬들에게 유용했다는 평이다. 케이팝(K-POP)과 같은 이벤트는 2011 F1 코리아 그랑프리 흥행카드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고급 숙박시설 문제는 올해도 여전했다. 조직위원회 측은 호텔급 숙박시설을 확충하고, 한옥호텔과 홈스테이 등으로 필요대비 120% 수준까지 준비했다고 발표했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부족한 예산을 감안하더라도 극히 소극적인 홍보도 도마 위에 오르기에 충분하다. ‘공중파 홍보 프로그램과 국내외 언론보도 확대에 따른 붐 조성이 이루어지면서 국민적 관심과 기업의 참여가 늘어났다’는 주최측의 자평이가깝게 느껴지지 않는것은 기자는 물론 국내 모터스포츠 전문기자단의 공통된 시각이다.
적어도 F1 그랑프리 홍보는 선거유세와 달라야 한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역이나 수도권 중심상권에서 벌이는 일시적인 홍보, 여기에 더해 몇몇 방송 드라마 후원사로 나서는 정도로는 전남 영암에서 벌어지는 F1 코리아 그랑프리를 널리 알리는 방편으로 필요충분하지 않다.
유료 관중이 늘어났다는 주최측의 발표도 일부 미심쩍은 부분이 없지 않다. 공식 발표된 2011 F1 코리아 그랑프리 관객은 16만여 명. 입장료 일부를 인하해 눈에 보이는 유료 관중이 많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서킷 입구에서 목소리를 높인 암표상의 등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지난해처럼 드러내놓고 공짜표를 남발하지는 않았더라도, 정해진 값보다 평균 50% 이하로 팔리는 암표는 정상적인 기준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사소한 부분일 수도 있으나, 결승 당일에 선보인 개막 그리드 이벤트는 지난해와 차별성이 없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서포트 레이스 선정에도 심혈을 기울였어야 했다. 뚜렷한 개성 없이 4개 클래스가 혼주한 티빙 슈퍼 레이스 챔피언십 최종전은 별다른 감흥 없이 시간만 채웠을 뿐인듯 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주최측 입장에서 수익이 매우 중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F1 서포트 레이스라면 차라리 지난해와 같은 원메이크 형태의 단일 레이스가 훨씬 나아 보인다.
이를 종합하면 2011 F1 코리아 그랑프리는 전체적으로 앞으로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개선해야할 부분도 적지 않은 만큼 주최측의 간단없는 노력이 더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박기현(allen@trackside.co.kr), 사진/F1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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