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SBS에서 국내 최초 랠리스트 양성 오디션 프로그램 <더 랠리스트>가 방영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주관하는 이 이벤트에는 5천여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려들어 뜨거운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데요. 랠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이토록 컸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원자의 규모만으로 볼 때 ‘시선끌기’에는 성공한 듯합니다.
그러나 이벤트 주관사 현대자동차의 진정성에는 물음표가 붙습니다. 세계 랠리 정상 WRC의 높은 벽을 모를 리 없는 현대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이들에게 유럽권 랠리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물론 2년 동안의 연수를 거친다고는 하지만, 출발과 성장과정이 다른 차세대 유망주들이 활동하는 무대에서 경쟁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한국인 랠리스트를 양성하겠다는 현대자동차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려옵니다. 현대 월드 랠리 팀의 갈 길도 버거운 상황을 대입하면 <더 랠리스트>의 출사표를 신뢰하기가 더욱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과거 WRC에서 활동할 당시 현대자동차는 내세울 만한 성적도 아니면서 요란한 홍보전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WRC 최고 클래스에 도전한 현대의 2000년 매뉴팩처러 성적은 7위. 이듬해 5위에 이어 2002년에는 4위를 기록했지만, 푸조와 포드, 스바루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냈을 뿐이었고, 약체 슈코다에 겨우 1점 앞선 정도였지요. 그럼에도 현대는 세계적인 랠리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듯한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더 랠리스트>가 알맹이 약한 현대 모터스포츠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저간의 흐름이 투명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기우에 불과할까요?
국내 모터스포츠에 대한 현대자동차의 관심과 투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0년 역사를 간직한 현대기아 원메이크 레이스 정도를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겠지만, 다른 나라 카메이커의 왕성한 활동에 비하면 지지부진한 수준이라는 것이 모터스포츠계 전반의 시각입니다. 오랫동안 안방을 도외시한 현대자동차의 랠리스트 양성 프로그램은 그래서 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내 풀뿌리 모터스포츠에 시선을 돌리지 않는 현대의 행보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대자동차에 모터스포츠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지금과 다른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마추어 레이스 활성화 차원의 원메이크 레이스도 중요하지만, 더 늦기 전에 국내 최대 자동차회사의 위상에 걸맞은 행보로 손색없는 카테고리에 뛰어들어야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박기현(gokh3@naver.com), 사진/현대 W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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