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KSF) 개막전 제네시스 쿠페 챔피언십 포디엄 풍경은 낯설었다. 디펜딩 챔피언 최명길을 사이에 두고 서한-퍼플모터스포트 듀오 장현진과 전대은이 2, 3위 시상대에 올라간 것이다. 예상 밖 시나리오에 놀란 이들은 적지 않을 터. 라이벌팀들은 물론, 신생 서한-퍼플모터스포트 진영에서도 뜻밖의 결과에 고무된 분위기였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시리즈 2전을 앞두고 만난 서한-퍼플모터스포트 드라이버들의 얼굴에서는 또 다른 기운이 감돌았다. 여전히 밝은 표정에 데뷔전 포디엄의 여운이 스쳤지만, 차분함 속에 배인 다소 경직된 분위기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2전에 대한 부담 때문인 듯했다.
“어떻게 지냈느냐”는 인사에 돌아온 대답은 예상 그대로. 다들 그렇듯, 돌아올 레이스에 대한 준비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얘기였다.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서한-퍼플모터스포트 김용준 이사 역시 같은 대답을 전했다. 실력 출중한 팀과 드라이버들이 즐비한 제네시스 쿠페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왜 이 팀은 국내 레이스 가운데 가장 치열한 경쟁 무대를 선택했을까? 한국 DDGT 챔피언십 정상을 석권한 아마추어 최강팀의 또 다른 행보는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이에 대한 김용준 이사의 대답은 명쾌했다.
“사실 지난해부터 KSF 출전을 고려하고 있었다. 몇몇 이유로 늦추어졌을 뿐이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 입장에서 모터스포츠 분야의 중요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서한의 경우 그동안 자동차경주를 통해 상당한 테스트를 병행해 왔다. 제네시스 쿠페 챔피언십을 선택한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팀 시스템은 이미 갖추어져 있었으므로 별다른 진통 없이 좀 더 큰 무대에 뛰어들 수 있었다.”
‘모터스포츠를 또 하나의 연구소로 활용하고 있다’는 서한의 입장을 간결하게 전한 김용준 이사는 그러나 당장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중도 분명하게 밝혔다. 자동차경주에 출전하면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만, 여느 팀들과 다른 ‘툴’로 충분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만큼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이다.
“우리 회사 모든 직원들이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 이는 곧 전직원들이 좋아하는 공통분모 중 하나가 모터스포츠라는 얘기다. 따라서 서한이 모터스포츠에 참여하는 것은 사원들의 사기 진작에 적잖은 도움이 되고 있다.”
“모터스포츠 인프라 확대에 기여하고 싶다”
사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서한-퍼플모터스포트. 알고 보니 이 팀의 커리어는 그리 짧은 편이 아니었다. 2000년, 당시 ‘오비탈레이싱’이라는 이름으로 한국모터챔피언십, BAT GT 챔피언십, KGTC 시리즈 등에 꾸준히 참가한 것이다.
2010년, 서한-퍼플모터스포트로 이름을 바꾸고 제2의 창단을 거친 이 팀은 이후 굵직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국내 모터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할 계획을 실현해 나아가고 있는 것.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복안이 준비되어 있다. 신진 드라이버 양성, 그리고 모터스포츠 저변확대가 핵심이다.
장기적인 목표에 따라 추진 중인 사안인 만큼 당장 눈에 띄는 움직임은 덜한 편. 그러나 브로스(BROS)와 YR-모비벅스를 측면에서 지원하며 새내기 드라이버를 양성하고 있는 서한-퍼플모터스포트의 행보에는 진중함이 가득해 보인다. 이 과정을 통해 성장한 이들은 여전히 빈약한 국내 모터스포츠 인적 인프라를 넓히는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터스포츠 저변확대를 대전제로 한 플랜 역시 스타트라인을 벗어났다. 아직은 적은 규모지만, 올해부터 KSF 후원사로 참여하게 된 배경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모터스포츠가 한 차원 높게 성장하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서한의 출사표는 앞으로 귀하게 반추해야할 대목이라는 생각이다.
부침이 심한 국내 모터스포츠계에서 오래도록 진득하게 뿌리내리겠다는 서한-퍼플모터스포트. 이 팀에서 활동하는 드라이버, 장현진과 전대은은 후원사의 원대한 청사진에 부합하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할 각오를 다지고 있다.
다만, ‘당장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팀의 구상만큼은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단호한 입장이다. 2005년, 서로 다른 팀으로 출전한 자동차경주에서 만나 지금까지 끈끈한 유대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장현진과 전대은. 거친 레이스 현장을 거치며 터득한 두 드라이버의 지혜와 강인한 정신력은 이미 합격점을 훌쩍 넘어선 모습이다.
신생팀에서 펼친 장현진과 전대은의 데뷔전 역시 성공적. 쟁쟁한 라이벌들이 진을 친 제네시스 쿠페 챔피언십 개막전을 2, 3위 마무리한 두 드라이버는 앞으로도 서로를 독려하며 서한-퍼플모터스포트의 발전과 궤를 같이할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들의 포부가, 또한 서한-퍼플모터스포트의 올곧은 희망이 튼실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서한-퍼플모터스포트(Seohan Purple Motorsport)
팀 창단 2000년
대표 이문식
팀장 주노규
드라이버 장현진 전대은
치프 미캐닉 안현철
미캐닉 최우재 이규환
후원사 서한
모튤
ASA
박기현(allen@trackside.co.kr),사진/서한-퍼플모터스포트,K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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