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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6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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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지오와 아스카리, 1950년대 최고 드라이버


2차 세계대전을 거친 모터스포츠에는 변화의 바람이 밀려들었다. 빠르게 제자리를 찾은 모터스포츠계 사람들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세계 챔피언십을 추진했고, 1950년 5월 13일 영국 실버스톤 서킷에서 사상 최초의 F1 그랑프리를 개최했다.
1950년대에는 알파 로메오와 페라리, 마세라티, 메르세데스, 그리고 쿠퍼 팀이 레이스를 주름잡았다. F1 원년 챔피언은 주제페 니노 파리나. 역사상 최고의 드라이버로 손꼽히는 후앙 마누엘 판지오와 알베르토 아스카리가 드라이버즈 챔피언십 정상을 휩쓸었고, 50년대 후반에는 마이크 호손과 잭 브라밤이 세계 타이틀 왕좌에 올랐다. 이 가운데 판지오는 다섯 차례나 드라이버즈 우승을 차지해 F1 역사에 오래도록 남을 대기록을 세웠다.
주제페 파리나, F1 원년 챔피언 타이틀 제패
1950년 F1 그랑프리의 주연은 전설적인 알파 로메오 트리오 주제페 니노 파리나, 후앙 마누엘 판지오, 루이지 파지올리(이들을 3F로 불렀다)였다. 티포 158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라이벌을 압도한 이들은 페라리, 탈보, 마세라티 소속 드라이버들을 제치고 F1 원년 시상대를 점령했다. 세계 최초의 F1 그랑프리에 참가한 선수는 21명. 폴시터 파리나가 1950년 영국 그랑프리 에서 1위 체커기를 받았고, 파지올리와 레그 파넬이 2, 3위로 피니시라인을 갈랐다.
1951년에도 알파 로메오는 막강한 전력을 과시하며 F1 서킷을 호령했다. 파지올리 대신 48세의 노장 펠리체 보네토를 불러들인 알파 로메오는 후앙 마누엘 판지오를 드라이버즈 1위에 올리며 타이틀 2연패를 이루었다. 그러나 알파의 숙적 페라리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아스카리와 루이지 빌로레지, 프로일란 곤잘레스, 피에로 타루피 등 드라이버 4명을 알파 저격수로 내보낸 페라리는 375 경주차로 3승을 기록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페라리의 첫 우승 무대는 영국 실버스톤. 폴포지션에서 출발한 아르헨티나 출신 곤잘레스가 판지오를 누르고 소속 팀 페라리에 첫 우승 트로피를 바쳤다.
자금난에 빠진 알파 로메오가 사라진 52~53년 F1은 페라리와 알베르토 아스카리의 전성시대였다. 52년 2전(벨기에)부터 53년 3전(벨기에)까지 9전 연속 우승 기록을 작성한 아스카리는 빌로레지, 타루피, 파리나와 함께 페라리 성공시대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한편, 53년부터 남아메리카 대륙의 아르헨티나로 진출한 F1은 이때부터 월드 챔피언십에 어울리는 규모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1954년 F1은 2차대전이 끝난 뒤 복귀한 돌아온 메르세데스가 휩쓸었다. 판지오와 한스 헤르만, 칼 클링을 영입한 메르세데스는 F1 역사에서 가장 환상적인 경주차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W196 실버 애로우로 라이벌의 도전 의지를 꺾었다. 그러나 이듬해 그랑프리에서는 비극이 벌어졌다. 1955년 6월 11일. 르망 서킷에서 막을 올린 프랑스 그랑프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피에르 레베그가 운전한 메르세데스 경주차가 관중석을 덮쳐 80여 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빚어졌다. 이로 인해 독일, 스위스, 스페인 그랑프리가 연이어 취소되었다. 이태리 몬자에서는 페라리 스포츠카를 테스트하던 알베르토 아스카리가 기이한 사고로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F1 최초의 컨스트럭터 우승 팀은 ‘반월’
르망에서의 사고 여파로 메르세데스가 철수한 뒤 페라리로 옮긴 판지오는 드라이버즈 타이틀 3연패를 이루었다. 팀 동료 피터 콜린스와 마세라티의 에이스 스털링 모스를 제친 판지오는 페라리에서 개인통산 네 번째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판지오의 56년 타이틀 제패는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시즌 막바지까지 스털링 모스와 접전을 펼친 그는 경주차 고장으로 고전했지만, 콜린스의 경주차를 넘겨받아 감동적인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시리즈 종합 성적은 판지오, 모스, 콜린스 순. 3위 콜린스가 남긴 아름다운 행보는 판지오의 드라이버즈 4연패에 좋은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1957년 그랑프리도 판지오가 이끌었다. 페라리를 등지고 마세라티 250F로 갈아 탄 판지오는 스털링 모스와 루이지 무소를 누르고 다섯 번째 챔피언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이와 달리 판지오를 놓친 페라리는 단 1승도 올리지 못하는 흉년농사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반월의 급부상도 57년 F1의 화제였다. 영국 드라이버 모스와 토니 브룩스, 루이스 에반스 트리오를 전면에 내세운 반월은 3개 그랑프리를 석권하며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자금부족에 시달리던 마세라티가 57년을 끝으로 F1에서 철수하자 후앙 마누엘 판지오도 드라이버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로 인해 50년대 종반 F1은 반월과 페라리, 쿠퍼의 삼파전으로 마감되었다.
58년 선두 드라이버는 페라리 디노 246을 몬 마이크 호손. 시즌 최종전에서 2위를 차지한 호손은 카사블랑카 그랑프리 우승자 스털링 모스를 1점 차이로 따돌리고 힘겨운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F1 정상을 밟은 뒤 은퇴한 호손은 59년 1월에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한편 1958년에 신설된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십에서는 모스와 브룩스, 루이스 에반스가 활약한 반월이 초대 타이틀 주인공으로 결정되었다.
1950년대 마지막 그랑프리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잭 브라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토니 브룩스를 4점 차이로 제친 브라밤은 개인통산 첫 번째 드라이버즈 챔피언십 정상을 정복했다. 1959년 컨스트럭터즈 우승 팀은 쿠퍼. 반월이 떠난 그랑프리에서 페라리와 BRM을따돌린 결과였다.
박기현(allen@trackside.co.kr), 사진/태그호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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