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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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와 페라리,70년대 컨스트럭터 타이틀 양분


1970년대 F1은 로터스의 우승으로 시작되었다. 1963년에 처음으로 컨스트럭터 타이틀을 차지한 로터스는 70년대 F1에서 네 차례 챔피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페라리의 정상 행진도 주목할 만하다. 1964년 이후 10년 동안 컨스트럭터 정상에서 밀려나 있던 페리리는 75~77, 79년 F1에서 값진 성과를 거두었다.
F1 역사를 장식한 명 드라이버들도 70년대 그랑프리를 주름잡았다. 재키 스튜어트, 에머슨 피티팔디, 니키 라우다, 마리오 안드레티가 그 주인공. 69년 챔피언 재키 스튜어트는 71, 73년 타이틀을 티렐에 안겨주었고, 에머슨 피티팔디는 브라질이 배출한 첫 번째 F1 챔피언으로 명성을 날렸다. 70년대 대표 그랑프리카, 로터스72를 운전한 피티팔디는 5승을 거둔 72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불사조’ 니키 라우다는 75, 77년 드라이버즈 챔피언. 76년 독일 그랑프리에서 일어난 사고로 중화상을 입은 라우다는 2라운드를 건너뛴 뒤 몬자 서킷으로 돌아와 환상적인 레이스를 펼쳐보였다. 챔피언십 라이벌 제임스 헌트에 우승컵을 내주었지만, 이듬해 페라리에서 개인통산 두 번째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차지했다.
마리오 안드레티는 가장 성공한 미국계 드라이버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필 힐(1961년)에 이어 두 번째로 탄생한 미국인 F1 챔피언으로, 로터스 경주차를 타고 출전한 78년 그랑프리에서 걸출한 성적을 올렸다. F1, 인디애나폴리스 500(1969), 데이토나 500(1967)에서 모두 우승한 유일한 선수 마리오 안드레티는 14년 동안 6개 팀을 오가며 12승을 거두었다.
로터스와 페라리, 마치 팀이 선두 경쟁이 벌인 1970년 F1은 로터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남아프리카 키얄라미 서킷에서 시작된 시리즈 13전 첫 번째 레이스 승자는 잭 브라밤. 1955년 쿠퍼에서 데뷔한 브라밤은 자신의 F1 마지막 우승을 남아프리카 개막전에서 차지했다.
1970년 드라이버즈 챔피언 요헨 린트는 시리즈 3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개인통산 두 번째 F1 우승컵을 들었다. 이어진 벨기에 GP 결과는 리타이어. 그러나 포드 V8 엔진을 얹은 로터스 72C 경주차로 갈아탄 네덜란드 레이스부터 4연승을 거둔 린트는 일찌감치 드라이버즈 정상을 예약했다.
하지만 그의 첫 챔피언 타이틀은 화려한 결말과 먼 거리에서 빛을 잃었다. 브루스 맥라렌과 피어스 커리지가 운명을 달리한 이 해 이탈리아 몬자 서킷에서의 연습주행 도중 일어난 사고로 28세 요헨 린트가 세상을 등지게 된 것이다. 비극이 지나간 뒤 남아 있는 3라운드에서는 재키 아이크스가 2승을 거두었다.
페드로 로드리게스와 요 시페르트가 사고로 숨진 1971년 F1은 6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재키 스튜어트에게 두 번째 타이틀을 안겨주었다. 11전 중 6전을 우승으로 장식한 스튜어트는 마치의 젊은 별 로니 페테르손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소속팀 티렐에 컨스트럭터 우승컵을 바쳤다.
1972∼73년 F1은 다시 로터스가 주름잡았다. 1970년까지 네 차례 컨스트럭터즈 타이틀을 거머쥔 로터스는 2년 연속 전성기를 달렸다. 떠오르는 스타 에머슨 피티팔디가 72년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품에 안았고, 73년 우승컵은 재키 스튜어트가 가져갔다.
1974년에는 맥라렌이 첫 챔피언십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에머슨 피티팔디와 데니 흄을 출전시킨 맥라렌은 클레이 레가조니와 니키 라우다 듀오로 맞불작전을 펼친 페라리를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컨스트럭터 정상에 올랐다.
니키 라우다가 활약한 1975년은 페라리 전성시대의 1막이 열린 해였다. 모나코, 벨기에, 스웨덴에서 3연승을 거둔 니키 라우다는 프랑스와 미국 그랑프리에서 2승을 추가해 존 서티즈 이후 11년 만에 페라리 우승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매년 끊이지 않는 F1계의 비극이 75년에도 이어져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 해 11월, 폴 리카르에서 테스트를 마친 그레이엄 힐이 비행기 추락사고를 맞이한 것이다. 이 사고는 F1과 인디 500, 르망 24시간을 제패한 그레이엄 힐을 팬들에게서 앗아가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1976년 F1은 가장 극적인 시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제임스 헌트와 니키 라우다의 1점차 혈전이 그랑프리 팬들을 매혹시킨 것이다. 특히 75년 챔프 니키 라우다는 독일 GP에서 중화상을 입은 뒤 빠르게 복귀해 불사조의 저력을 펼쳐보였다. 그러나 76년 드라이버즈 타이틀은 제임스 헌트가 차지했다. 헤스케스 팀에서 1975년을 보낸 제임스 헌트는 맥라렌으로 옮긴 76년 F1에서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의 시가지 레이스가 추가된 76년 드라이버즈 타이틀은 일본 최초의 그랑프리가 개최된 후지 서킷에서 판가름났다. 선두 라우다와 2위 헌트의 점수 차이는 3점. 스릴 넘치는 두 선수의 추격전에서 3위를 기록한 헌트가 시즌 우승컵의 주인공이 되었다. 최종전 승자는 마리오 안드레티였고, 중도포기한 라우다는 헌트에 1점이 뒤져 시즌 타이틀을 놓쳤다. 그러나 니키 라우다와 페라리는 77년 F1에서 로터스의 추격을 멀리 따돌리고 타이틀 3연패를 이루어냈다.
이어진 78~79년 F1 타이틀은 로터스와 페라리가 나눠 가졌다. 명장 채프먼의 로터스79를 탄 마리오 안드레티가 78년 그랑프리를 휩쓸었고, 신뢰성 높은 312 T4가 페라리의 79년을 빛냈다.
페라리의 독주에 제동이 건 팀은 로터스였다. 75, 77년 더블 타이틀, 76년 컨스트럭터즈 정상 페라리는 78년 우승컵을 로터스-포드에 내줬다. 로터스의 선두주자는 마리오 안드레티. 명장 채프먼의 경이로운 로터스79로 서킷을 공략한 안드레티는 눈부신 테크닉을 유감 없이 자랑했다. 그러나 로터스는 1978년 이후 94년까지 컨스트럭터 챔피언에 오르지 못했다. 78년은 안드레티에게 착잡한 해였다. 팀동료 로니 페테르손이 몬자에서 일어난 사고로 부상한 뒤 끝내 회복되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자크 라피테가 1, 2전을 석권한 1979년 F1은 리지에-포드의 강공으로 달아올랐다. 그러나 질 빌르너브와 조디 쉑터가 6승을 합작한 페라리가 70년대 마지막 F1 컨스트럭터 우승컵을 차지했다. 벨기에, 모나코,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조디 쉑터는 소속팀 페라리가 통산 여섯 번째 컨트스턱터 타이틀을 차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페라리의 더블 타이틀로 막을 내린 70년대 F1은 넬슨 피케, 니키 라우다, 알랭 프로스트, 아일톤 세나를 챔피언 반열에 올리는 80년대로 넘어간다. 이 기간에는 윌리엄즈, 페라리, 맥라렌이 컨스트럭터 경쟁을 벌였다.
RACE WEEK STAFF, 사진/레드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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